[교통캠페인/차선을 지키자]보행자천국 런던

  • 입력 1999년 5월 30일 19시 18분


영국 런던의 대표적 번화가인 옥스포드가.

낮시간에는 버스와 택시 외에 일반차량의 통행이 제한될 정도로 교통량이 많은 곳이지만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런던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도 달려오는 차량만 없다면 그냥 건넌다. 차량통행과는 상관없이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는 무조건 건널 수 없다는 우리의 교통문화와는 딴판이다.

이곳 사람들은 무단횡단을 불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시내의 모든 도로는 보행자가 우선권을 갖기 때문이다.

영국이 무단횡단을 관습적으로 허용한다고 해서 영국의 횡단보도 제도가 허술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영국은 시민의 안전을 고려해 다양하고 독특한 횡단보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80년대 초 도입된 제브라(얼룩말)횡단보도는 영국에서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것. 얼룩말 무늬처럼 차선을 지그재그로 그려놓은 이 횡단보도는 보행자 우선정책이 철저히 지켜지는 곳으로 보행자가 이곳에 한발이라도 들여놓으면 차량들은 무조건 정지해야 한다. 이곳에서의 교통사고는 전적으로 운전자 책임이다.

교통량이 많고 도로폭이 넓은 간선도로에는 중간에 교통섬이 있는 펠리컨횡단보도가 설치돼 있다. 펠리컨이 먹이를 먹을 때 큰 부리에 한번 저장하듯 횡단보도를 건널 때 교통섬에서 한번 멈춰 선 뒤 안전하게 건너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밖에도 자전거 이용자가 건널 수 있는 횡단보도와 보행자가 횡단보도상의 신호등 신호를 바꿀 수 있도록 만든 횡단보도도 있다.이같은 다양한 횡단보도와 엄격한 보행자 위주의 교통정책 덕분으로 97년 영국에서의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도로를 횡단하다 숨진 보행자는 9백73명에 불과했다. 이는 10년전인 87년의 1천7백3명에 비하면 57% 수준으로 줄어든 것.

영국정부는 그러나 보행자 사고의 40% 정도가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에게 발생하고 있는 점을 중시, 어린이들의 안전보행에 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어린이에게 안전한 도로횡단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각 구청 소속의 도로안전관이 학교를 방문해 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영국정부는 횡단보도를 다양하게 만들어 보행자의 편의와 안전을 도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꾸준히 차량의 제한속도를 낮추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환경교통부 산하 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차량 속도가 시속 64㎞(40마일)면 사고시 보행자의 85%가 사망하지만 시속 32㎞(20마일)면 사망률이 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속도를 절반으로 줄이면 사망자는 17분의 1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영국정부는 주택가와 학교 주변은 물론 번잡한 상업지구에도 제한속도를 시속 30마일(48㎞)에서 20마일(32㎞)로 줄이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런던대 교통연구센터 리처드 앨솝교수는 “제한속도를 낮춘 결과 교통사고가 70% 줄었고 특히 보행자의 사고율은 80%까지 줄었다”고 말했다.

〈런던〓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英 사고발생률 세계 최저▼

영국은 왜 세계에서 교통사고 발생률이 가장 낮을까.

이같은 의문은 영국에서 조금만 운전을 해보면 저절로 풀린다.

영국 교통문화의 핵심은 첫째도 인명중시 둘째도 인명중시다.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서 있으면 거의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차를 멈춘다.모든 도로는 차량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영국인들은 믿고 있다. 따라서 모든 도로교통규칙은 보행자보호 우선원칙에 따라 만들어져 있다.

영국의 교통문화에 익숙치 못한 한국인들은 자주 사고를 내는 편이다. 지난해 한해동안 필자가 운영하는 보험회사에 자동차보험을 가입한 재영 한국인들의 사고발생 빈도를 보면 영국인의 평균치보다 9배나 높다.

영국인들은 운전을 하면서 전혀 서두르지 않는다.

아무리 차량정체가 심해도 짜증을 내거나 경적을 울리며 신경질을 부리지 않는다. 음악 등을 들으며 조용히 기다린다.

이같은 여유와 질서의식은 학교에서부터 길러진다.

교통경찰을 학교에 초청해 학생들과 함께 놀게 하면서 교통규칙을 자연스레 몸에 익히게 한다.

이들은 규칙을 지키되 실용성을 감안하는 합리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가령 건널목에 빨간 불이 켜있어도 차량통행이 없으면 자기 책임하에 건너간다.

영국의 교통문화는 철저한 인명중시를 바탕으로 조급히 서둘지 않는 여유로움과 실용주의가 잘 어우러진 결과인 셈이다.

박윤희(재영한인회 사무국장)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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