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천양희 「단추를 채우면서」

  • 입력 1999년 5월 26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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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시집‘오래된 골목’(창작과 비평사)에서

천양희(시인)

지금도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겠지만, 그래서 할 수 없는 인간밖에 더는 못되겠지만, 이제는 죄가 깊어 쐐기풀 옷으로도 구제받지 못할 정도라 할지라도…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밤…’ 이 한 구절 앞에 마음을 비벼본다. 무릎을 꿇어본다.신 경 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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