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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5월 26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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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침개 부쳐 먹자.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먼저 그렇게 중얼거리게 되죠. 나는 소나기 내릴 무렵의 어둑신한 하늘이며 요란을 떨지만 사실은 고즈넉하게 느껴지는 우레 소리며 풀꽃 향기와 흙냄새며 살갗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썰렁한 한기가 좋아요. 비 오는 날 덧걸이 헛간의 아궁이 앞에 주저앉아 잔솔가지를 태우노라면 방안에서는 당신의 콧노래가 간간이 들려왔지요. 비 안개가 산 위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몰려 내려올제 습기를 머금은 대기 속에 솔가지 타는 연기가 섞이면 아늑한 느낌이 들어요. 먼 옛날의 고향 집에 당도한 듯하지요. 너푼너푼한 호박 잎이나 댓잎에 후둑 후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차츰 일사불란하게 떨어지는 빗소리가 귓바퀴 안에 가득차면 조름이 오곤 했어요. 당신과 나는 어떤 때 산 아래 내려갔다가 비를 맞고 돌아와, 흙으로 더럽혀진 고무신 발등에 물을 부어 깨끗이 헹구고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부벼 닦고나서, 몸에 달라붙은 셔츠를 벗고 바지나 치마도 벗고 속옷까지 보송보송한 새 것으로 갈아입고는, 이불을 둘러쓰고 턱을 괴고 나란히 엎드려서 비가 내리는 산천을 내다 보았어요. 가끔씩 등을 으쓱하고 몸서리를 치면서 빗물이 모여서 또랑으로 세차게 흘러 내려가는 소리를 듣곤 했지요. 비가 그치면 햇빛이 무슨 얇은 천같이 드리워졌다가는 사라지고 하면서 풀잎의 물기가 빛나고 나뭇가지에서 떨며 비를 피했던 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다니며 울기 시작하거든요. 꾀꼬리를 일본에선 고오 호끼꾜 라구 한다지요. 가만히 들어보면 꾀꼬리는 꾀꼴 꾀꼴하고 울지 않아요. 정말 고오 호끼꾜 라고 울더라니까. 무슨 기적처럼 진노랑색 손수건 같은 것이 비 그친 뒤의 숲 사이에서 펄렁 하면서 휘날려 가는 거 있죠. 고오 하면서 조금 망설이는 듯이 끌었다가 호끼의 끼에서 옥타브가 맑게 올라가요.
초 여름의 밤 새 이름은 모두 먹는 것과 관계가 있다던 당신 말이 생각나요. 그 무렵이면 겨우내 아껴 먹었던 양식도 다 떨어지고 보리를 베기엔 아직 이른 철이니까. 그래요, 배가 고파 밤에 깨어나면 다시는 새벽녘까지 잠이 들질 않고 엎치락 뒤치락 하며 살아갈 생각 식구들 생각 돌아올 새 계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눈이 말똥말똥해지겠지요. 소쩍새는 슬프고 애잔한 울음소리만으론 아주 작고 아름다운 몸집을 하구 있을 줄 알았는데 언젠가 도감에서 보니까 부엉이더라구요. 머리에 뿔까지 나구요. 소쩍새는 ‘솥적 솥적 솥 적다’ 하구 운다지요. 양식이 모자라서 한밤중에 금방 꺼진 배를 안구 누워 있으면 잠두 안 오구 적은 솥에 모자란 밥을 먹어서 배가 고프다구 그렇게 들린다지요. 머슴새는 또 아까 낮에 고픈 배를 참고 땡볕 아래서 밭을 갈아엎던 자신처럼 변하지요. 소를 몰 때 혀를 차듯이 쯧, 쯧, 쯧, 쯧, 하고 우니까요. 부엉이는 어떻게 우나요. ‘떡 해 줄게 부엉, 밥 해 줄게 부엉’ 그렇게 운대요. 그리고 쪽박새는 주려 죽은 며느리가 화신한 새라는데 작은 쪽박에 밥을 퍼 주던 시어머니를 원망해서 ‘쪽 쪽 쪽, 쪽박 바꿔주’ 하며 운답니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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