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박윤철/美명문대 유학생의 몰락

  • 입력 1999년 4월 4일 19시 38분


“아버지 사업이 망하지만 않았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3일 오후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계에 강도상해용의자로 붙잡혀온 한모씨(25).

그가 인터넷게임을 하다 통신상에서 만난 유모씨와 함께 저지른 첫 범행은 이른바 ‘퍽치기’. 1일 오후 11시반경 서초구 서초동 유흥가에서 술취한 행인을 때리고 지갑을 빼앗았다. 다음날 서초동의 한 교회에 들어가 옷걸이에 걸려있는 목사의 양복주머니에서 현금 50만원을 훔친 한씨는 이어 경기 부천의 한 목욕탕에서 손님의 옷장을 열고 10만원을 훔치기도 했다.

한씨의 잇따른 범죄행각은 3일 서초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훔친 주민등록증 10여개가 발견되면서 막을 내렸다.

전주에서 백화점을 운영하던 아버지 덕에 남부럽지 않은 청소년기를 보낸 한씨. 9년전 고등학교 1학년때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인 N대학에서 파괴공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97년 8월 귀국해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백화점이 부도가 나면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하지만 평소 씀씀이를 버리지 못한 한씨는 결국 범죄의 길로 빠져들고 말았다.

아내와 아들까지 둔 한씨는 훔친 돈을 대부분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이 있어 미국에 다시 들어갔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집안이 망한 탓으로 돌리는 한씨를 경찰관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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