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정계개편 숨바꼭질

  • 입력 1999년 2월 9일 19시 05분


여야간 대화의 숨통이 트이는 듯하면서 말썽많은 정계개편론이 황급히 꼬리를 감추고 있다. 물밑으로만 잠행하던 괴물체가금방이라도정체를드러내고 깃발을 높이 치켜들 것만 같은 형세였다. 대통령부터 더는 못참겠다는 듯이 결의를 단호하게 내비쳤다. 명분은 정국안정과 다수결원칙의 준수, 이름표는 동서화합형이었다. ‘여당을 다수로 만든 것’이 국민의 정부가 이룩한 정치발전이라는 기묘한 논리도 등장했다.

▼ 부상-잠복 들락날락 ▼

그러나 단 2∼3일이었다. 야당의 반발이 거세진데다 때맞춰 영남권 정서가 노골적으로 악화되자 갑자기 ‘순리론’을 앞세워 “인위적 정계개편은 없다”고 손사래를 내저었다. 손사래를 내저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 정무수석을 전격 교체하면서 야당과 PK지역에 화해 신호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여야간 손바닥 마주치는 소리가 반짝 들리는 듯하지만 구경하는 사람들로서는 앞뒤를 분간하기 어렵다.

정치가 매사 이런 식이라면 문제다. 좋게 말하면 여론에 물어가며 때를 기다리겠다는 식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정해진 그림이나 확신 없이 좌고우면하는 식이다. 문제의 ‘YS 몰아붙이기’만 해도 그렇다. 뒷감당도 못할 일을 느닷없이 벌여놓고 파문이 일파만파 번지자 지레 덮는 듯하면서 반발만 불러 일으켰다. 몰아붙이기로 했으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뻔한 반발에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사전준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뜯어봐도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도무지 줄거리가 없다. 사정(司正)문제 하나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정치다. 야당 잘한 것도 없지만 여당 잘한 것도 없다. 경제정책이나 대북정책에는 일관된 구도가 있어 보이는데 막상 국내정치는 앞이 안보인다. 언필칭 저항 때문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항 없는 개혁은 없는 법이다. 저항이 두려워 거둬들일 일이라면 애당초 긁어 부스럼 낼 필요가 없다.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변죽만 때릴 것이 아니다. 게릴라정치로는 아무것도 이룰 것이 없다.

▼ 정치불신 혼란만 불러 ▼

숨바꼭질하듯 드러냈다 숨었다 하는 정계개편론이 그 전형이다. 지금 꼬리를 감췄다고는 하지만 여권이 정계개편을 포기했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실은 야당이 제공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초 야당이 국무총리 인준을 거부하면서 정계개편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부터 그렇다. 그 결과가 야당의원 빼내기에 의한 공동여당 국회 과반수의석 확보였고 그 연장선상에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 ‘동서화합과 정국안정을 위한 전국정당화’라는 대개편론이었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여당은 구체적인 구상을 내놓지 않았다. 그림도 내놓지 않고 ‘인위적인 개편은 않겠다’ ‘국민이 개편을 원한다’를 간헐적으로 반복하다가 본격적으로 이제 하겠다고 나서자마자 거센 역풍을 맞고 물러섰다. 잠복한 것이다. 그 잠복기간이 얼마나 길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부상할 것이다. 여당의 ‘정치시계’로 봐서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여당은 이제 인위적 정계개편은 하지 않겠다는 말은 거둬들이는 편이 낫다. 정치개혁을 위해서나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나 새로운 정당구조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개편구상을 구체적으로 털어놓고 공론에 부쳐야 옳다. 내년 4월의 총선을 기다려 국민이 만들어주는 정치구도로 가는 것이 정계개편의 ‘순리’라면 그 외의 모든 것은 어차피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국민에게 물어서 안되겠다면 손털고 일어서든가 그래도 꼭 하겠다면 해놓고총선에서묻든가신중히 선택해야 할 일이다. 들락날락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 터놓고 국민에 물어야 ▼

정계개편과 연계해서 풀어야 할, 또는 정계개편에 앞서서 풀어야 할 공동여당 내의 내각제 개헌문제도 마찬가지다. 숨바꼭질로는 안된다. DJP 당사자가 빈번히 만나서든 또는 DJP합의문대로 내각제추진위원회 설치를 통해서든 공동여당이 터놓고 문제를 짚어나간다면 못 풀 일이 없을 것이다. 하면 언제 어떻게 하겠다든가 안하면 안하는 대로 또 어떻게 하겠다든가 딱 부러지게 결정해야 할 일이다. 여권 내부 문제부터 결단을 내려놓고 야당과 만나야 한다.

변죽 때리기는 정치에 불신만 키운다. 불신은 혼란을 부르고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결론은 뻔하다. 정계개편이든 내각제든 터놓고 묻자. 이제 더 이상 안개 피우지 말자.

김종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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