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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2월 4일 2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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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붕괴 겨냥 안될말
거기에다 정치의 민주화가 요원한 또 다른 이유로 여야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아 ‘함께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이 없는 점을 든다. 현재의 야당은 과거 여당시절에 당시의 야당을 존중하지 않았고 여당도 과거 야당때 극한 투쟁으로 일관해 ‘정치’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 입장이 바뀐 집권 여당은 박해받은 만큼 까다로운 시어미 노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프랑스 민주정치의 기본인 ‘톨레랑스(인내)’를 체득하지 못한 채 관용은 시렁에 얹어놓고 입으로만 민주정치를 하는 격이다.
하긴 세상이 달라져 여야정권교체를 한 것만도 민주정치가 진일보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나라 정치의 고질은 인내와 관용 등 인지적 감성적 요소 이외에 일종의 관행같은 것에 있다. 그 관행은 선거전에는 다당제이다가 선거후에는 인위적인 양당제로 전환되는 것을 이른다. 선거 전에는 당선의 필요조건인 공천에서 탈락하면 다른 정당으로, 아니면 당을 새로 만들어 공천 모자를 써야하기 때문에 정당수가 늘 수밖에 없다. 그런 정당들은 선거후면 안개 걷히듯 없어지면서 양당제로 바뀐다. 그런데 또 문제는 양당제로 거저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당으로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여당이 협박과 회유로 야당의원들을 끌어들인다고 야당쪽에서는 비판한다.
과거와 크게 변하지 않은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최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동서화합형 정계개편’을 주장했다. 지역감정과 화합이라는 것이 때로 허상이긴 하지만 ‘동서화합’은 과거의 찌든 지역간 갈등과 불신을 씻는 뜻에서 환영할 일이고 ‘정계개편’ 또한 불미스러운 정치관행 등을 척결하는 데 있어서 필요불가결한 주장이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 정계개편이 야당 무너뜨리기를 동반하면 화합의 대의가 아무리 좋아도 정국불안의 불씨가 지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개혁의 큰 물줄기에 따라 한국정치를 보다 민주화시킴에 있어서 몇가지 전제에 동의할 필요가 있다. 그 전제는 선거를 전후해 정당의 출현과 퇴출이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정치에서 이념과 사상이 희석되었다고는 하나 치졸한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정당이 국민의 뜻을 아우르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與 자만심 먼저 버려야
나아가 민주정치는 합의제 또는 협의제로 하게 되는데 이 나라 민주주의를 선진국형으로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필요에 따라 연대도 하고 견제도 할 수 있는 협의제 민주주의를 지향했으면 한다. 그러나 일체감과 단일성의 신화를 아직도 믿고 있는 국민의 속성상 의논껏 하는 협의제 민주주의가 과연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지가 미지수이다. 이것이 안되면 다수당이 있어야 안정된다는 논리가 타당해지고 반대로 내각책임제 정치는 늘 삐걱거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국 50년, 그리고 앞으로 50년의 초석을 다져야 할 현 정부는 정치개혁을 위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새로운 틀을 짜려면 과거의 어두운 구석을 도려내야 하기에 척결도 하고 청산도 해야 하겠지만 ‘부정적 민주주의의 공고화’(Negative Democratic Consolidation)만으로는 역사를 아무리 바로 세우려고 해도 무망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둘째, 정계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살부터 도려내야 정당성의 무게가 실린다. ‘개혁의 주체가 빛’이라는 착각과 환상을 가지고 있는 한 수습하기 어려운 ‘검란(檢亂)’처럼 되고 말 것이다. 진정 ‘동서화합’과 ‘정계개편’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싶으면 여당부터 정치인 퇴출을 포함해서 고질적 정치 관행을 고쳐야 한다.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가니 금년 1년은 정치개혁을 완성해야 하는 해이다. 가장 난제인 정치개혁을 어떻게 마무리짓느냐에 국민의 정부의 명운이 걸려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기 바란다.
김광웅(서울대교수·정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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