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심재륜고검장『모든것 버리니 두려움 없다』

  • 입력 1999년 1월 28일 19시 38분


심재륜고검장
심재륜고검장
검찰사상 초유의 ‘항명파동’ 주역인 심재륜(沈在淪)대구고검장은 28일 새벽 귀가중 서울 여의도 집 근처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성명발표 이후의 심경과 자신 및 검찰의 앞날 등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인터뷰 도중 여러차례 “나는 모든 것을 다 버렸다. 다 버리면 두려움도 없고 마음이 편한 법이다”며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그는 의외로 차분하고 안정된 모습이었지만 그의 말에서는 격정과 비통함 그리고 울분이 느껴졌다.

―성명을 발표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나는 평생 검사로서 명예를 중시해왔고 누구 못지 않게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또 30년 검사생활 동안 우리사회의 부패와 비리척결에 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다 해왔다. 그런 나를 떡값이나 받고 술이나 얻어먹는 검사로 조작해 내몰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당하면 평생 한을 품고 살아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격한 감정을 삭이지 못한 듯 “나의 전생애 및 전재산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비리사실이 드러나면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종기(李宗基)변호사 사건 수사가 왜곡됐다고 문제삼는 근거는….

“이변호사는 지금 정상상태가 아니다. 심리적 공황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또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의 말만 믿고 마치 진실인 것처럼 발표해 사람을 매도하는 것은 수사의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수사가 아니라 ‘사냥’일 뿐이다. 마녀사냥…. 도대체 이변호사의 입에 기대어 옥석을 구분하고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심고검장은 혼자말로 “깨끗한 사람이 희생양이 돼서는 안되는 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조직이 최악의 위기에 처하게 됐는데 부담스럽지 않은가.

“내가 한 일은 훌륭한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금은 비상상황이다. 나 개인으로서도 그렇고 검찰 전체를 위해서도 그렇다.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조직을 붕괴시키는 경솔한 행동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그 조직이 누구를 위한 조직인가. 조직의 나쁜 부분은 도려내져야 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이번 일을 결정하기까지 심적인 고뇌와 갈등이 적지 않았다며 저간의 경위를 비교적 자세히 털어놨다.

“처음에 저쪽(검찰 수뇌부를 지칭)에서 나를 죽이기 위해 조직적인 음모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순진하게도 최선의 해명을 하면 통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저들은 그럴수록 나를 더욱 ‘조작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평소 명예롭게 공직생활을 끝마치기를 원했는데 매우 아쉽다.”

―김태정(金泰政)검찰총장을 강도 높게 비난했는데….

“원래 김총장과 나는 사이가 좋았다. 나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기도 했다. 이번 일은 김총장과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이 징계를 하겠다면 받아들이겠는가.

“징계사유가 되는가. 사표내는 것도 이미 각오가 돼 있다. 나는 벼슬에 미련이 없다.”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됐는데….

“거듭 말하지만 나는 벼슬에 목을 매는 사람이 아니다. 지금도 일부 검찰간부들이 총장이 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일로 후배검사들이 동요하고 있다.

“희생은 나 한사람으로 족하다. 후배검사들이 나의 충정을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한다. 자중자애하며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이 되도록 더욱 임무에 충실하길 바란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가.

“나 개인문제에 대해서만 말하면 나는 이제 끝이다. 온갖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잘 안다.”

그는 “나는 영웅이 아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다 버렸고 끝까지 버릴 것이다”며 말을 맺었다.

〈양기대·이수형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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