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사이드]「입영열차」 13년만에 부활

  • 입력 1998년 11월 25일 19시 17분


플랫폼을 가득 메운 ‘빡빡머리들’. 그들의 손을 잡고 측은한 표정을 풀지 못하는 가족과 친구들. 애써 웃음 짓는 여자친구의 눈엔 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입영열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군대에 다녀온 중장년층이면 누구나 마음속 앨범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젊은 날의 초상’이다. 하지만 반드시 ‘옛날 필름’을 돌려야만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경기 의정부역에선 일주일에 한번씩, TV 광고처럼 똑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의정부 제306보충대에 입영할 젊은이들을 태운 입영열차가 매주 화요일 이곳에 도착하기 때문.

입영열차는 85년 사라졌다 올 1월 부활했다. 변한 것은 입대자의 가족 친지가 함께 열차에 탑승할 수 있다는 점.

예전엔 징병영장을 받은 두서너개 시 군의 젊은이가 철도역 인근 지정된 장소에 집결하면 군 호송관이 명단을 점검하고 열차에 태워 훈련소까지 인솔해 갔다. 일반인이 징집대상자와 함께 승차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

그래서 요즘엔 출발역보다는 도착역에서 ‘코끝 찡한 장면’이 연출된다.

24일 오후 1시경 입영열차를 타고 의정부역에 도착한 손영구(孫永久·48·부산 북구 만덕2동)씨.

“군에 입대하는 애가 처음이고 해서…. 걱정이 앞서 따라왔어요. 25년전 입영열차 창문 틈으로 삶은 계란을 밀어넣어 주시며 우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만합니다.”

손씨는 역을 빠져 나갈때까지 입대하는 아들 병형(秉亨·21)씨의 손을 놓지 않았다.

두시간 가량 지나면 입영자를 훈련소에 들여보낸 가족 친지들이 다시 의정부역에 들어선다. 눈가가 붉어진 어머니,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헛기침을 하는 아버지, 힘없이 발길을 옮기는 애인….

그들은 ‘귀향열차’에 올라타 빈 좌석만큼이나 썰렁한 마음을 달래며 집으로 향한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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