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병상의 박세리

  • 입력 1998년 11월 2일 19시 30분


세계 골프계의 ‘신데렐라’ 박세리가 결국 몸져 눕고 말았다. 5월 미국 LPGA챔피언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 박세리는 이후 무리한 출전스케줄로 ‘혹사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동안 TV로 위성중계된 박세리의 얼굴표정에서도 이상징후는 발견됐다. LPGA투어 첫 우승 당시 보여준 해맑은 함박웃음은 대회를 거듭할수록 점차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한시도 쉴틈 없이 짜여진 이번 귀국일정은 가뜩이나 파김치가 되어 있는 박세리를 탈진상태로 몰고 갔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경기를 마치고 바로 비행기에 오른 그는 지난달 27일 새벽 김포공항에 내린 뒤 연이은 강행군에 시달렸다. 밤늦게까지 장소를 바꿔가며 수많은 사람과 만나야 했다. 중간중간 골프중계 해설자로 나서거나 직접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다.

▼병상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박세리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다.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세계를 제패할만큼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지니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는 이제 스무살을 갓 넘긴,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임에 틀림없다. 박세리가 LPGA투어에서 4승을 거둔 뒤 부진에 빠져 있는 것도 지나친 기대에 따른 정신적 신체적 부담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박세리가 시합 때마다 반드시 우승을 따오는 ‘승리의 여신’일 수는 없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유망선수일 뿐이다. 그가 마음 편하게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야말로 그를 위한 최상의 후원이다. 박세리의 골프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당장의 열매에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 안목으로 ‘박세리 마케팅’을 추진해야 한다. ‘반짝스타’보다는 골프역사에 길이 남는 박세리를 원한다.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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