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악덕 채무에 쐐기

  • 입력 1998년 10월 10일 19시 11분


대법원의 민사소송법개정시안은 지난 60년 민소법 제정 이래 처음으로 전면 재정비를 시도하는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의 법운용 경험을 반영하고 독일 일본 등 외국법 체계를 흉내낸 것에서 벗어나 신속한 재판의 필요성 등 우리 현실에 맞는 방향으로 손질한 점이 특징이다. 어려운 법률용어를 우리말로 바꾸고 쉬운 문장구조로 개선하려는 것도 잘한 일이다.

시안내용 중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채권자의 권리보호를 강화한 점이다. 법원은 채무자가 재산목록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 6개월까지, 1천만원 이하의 소액 채무자가 확정판결을 받고도 갚지 않으면 30일까지의 감치(監置)명령을 내릴 수 있게 했다. 후자의 경우 횟수제한도 없다. 감치는 엄밀히 말해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정식재판에 의한 형사처벌은 아니지만 몸을 가둔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능력이 있는데도 갚지 않거나 재산을 고의로 숨기는 악덕 채무자는 이런 제재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신용사회의 질서확립을 위해서도 정당하다.

재판에서 이겨봐야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으면 판결문은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그런 사례가 많다보니 재판에 대한 신뢰와 사법부 권위가 크게 훼손되고 있다. 악덕 채무자 처벌조항이 현행법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정시안보다 훨씬 무거운 징역 3년까지 처할 수 있게 돼 있으나 실제로는 검찰의 약식기소에 의해 약간의 벌금형으로 끝나는 것이 관행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수단이 못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감치명령은 법원 단독으로 내릴 수 있는 강력하고 신속한 제재방법이란 점에서 효과가 기대된다.

반면 채무자에게 가혹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민사관계인 채권채무를 법원의 강제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풍토가 조장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채권채무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민사관계는 민법이 규정하고 있듯이 신의성실(信義誠實)을 대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서민들의 단순채무에까지 신체구금 방법이 마구 사용된다면 삭막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 소액 채무자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라는 점, 서민을 울리는 악덕 채권자도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법원이 채무불이행자를 금융기관에 통보, 신용불량자로 분류토록 해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효과적이다. 신규대출중단 신용카드사용중지 금융거래금지 등은 무서운 채무이행 강요수단일 수 있다. 신체구금은 재산은닉혐의가 있는 등의 악덕 채무자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공청회 등 법안보완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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