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지구촌/아사히신문]日 경기회복만이 亞경제 회생

  • 입력 1998년 10월 6일 19시 27분


▼아사히신문▼

‘기적’을 낳을 때까지의 힘든 노력에 비해 그로부터 추락하는 것은 이토록 빠르고 맥없는 것일까.

미국에서 열린 일련의 국제금융회의에 맞춰 세계은행(IBRD)이 ‘동아시아―회복에의 길’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동아시아의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다룬 ‘동아시아의 기적’이란 제목의 세계은행 보고서가 화제가 된 것이 불과 5년전의 일이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아시아 경제의 절정기였다. 작년부터 시작된 위기의 고통은 이제 정부와 기업부문에만 그치지 않고 국민 한사람 한사람에게까지 파급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최근 두드러지는 것은 생활고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물건을 팔기 위해 걸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한국과 태국에서도 도시 중산층이 임금삭감과 실업으로 인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위기가 이처럼 심각해진 것은 성장을 이끌어온 민간기업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의 파탄 등에 의해 태국에서는 대기업 4개중 1개, 한국에서는 5개중 2개, 인도네시아에서는 3개중 2개가 경영난에 빠져 있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각국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재정지출 확대와 금리인하를 통한 내수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세계은행의 자매기관인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원의 대전제로 강조한 긴축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IMF도 올해 봄 이후 각국의 재정확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현시점에서는 세계은행 보고서와의 사이에 모순은 없다. 아시아경제의 너무나 심각한 침체때문에 IMF도 노선변경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IMF의 한계가 명백해진 이상 위기로부터 탈출하는 돌파구 마련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각국의 내수침체로 아시아의 역내무역은 줄어들고 아시아로부터 발생한 금융불안은 세계 전체를 뒤덮고 있다.

무엇보다 아시아 각국은 물론 선진국도 참여하는 정책면에서의 협조가 필요하다.

세계은행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각국 정부와 국제기관이 협력해야 상승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한다.

동남아시아와 한국에 3백억달러의 자금지원의사를 밝힌 일본정부의 ‘신 미야자와(宮澤) 구상’은 그러한 지원의 새로운 틀이다. 이 구상에는 일본수출입은행에 의한 융자 등 종래의 지원 외에 상대방 정부가 자금을 조달할 때의 채무보증과 이자지원 등 지금까지 없었던 방법도 포함돼 있다.

자금부담을 가급적 줄여 실효성을 높이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채무보증에 의해 일본이 부담하는 리스크에 제어가 가능할 것인가, 지원하는 정권의 안정성과 민주화 진전도는 어디까지 고려할 것인가 등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민간채무의 처리와 구조개혁, 통화안정의 구조 만들기 등 아시아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의 해결이 불가결하다.

높은 저축률과 노동자의 근면성 등 ‘동아시아의 기적’을 지탱해온 특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한 저력을 다시 발휘할 수 있도록 자금뿐만 아니라 정책수립면에서도 일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회의는 일본의 경기회복을 강력히 촉구했다. 일본의 경기회복 없이는 아시아의 재생은 없다.

〈정리·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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