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건/처벌 못하는 「몰래 카메라」

  • 입력 1998년 10월 1일 19시 37분


‘비난받는 행위가 모두 법으로 처벌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인천지검 부천지청 황은영(黃銀永)검사는 요즘 이런 고민에 빠졌다.

속사정은 이렇다. 지난달 25일 김모씨(32·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곡2동)가 독서실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로 경찰에 의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그러나 황검사는 이 사건을 다시 경찰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현행 형법상 처벌 법규가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경찰은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을 적용했다. 하지만 황검사는 몰래 촬영한 화면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가 시중에 팔린 것이 아니어서 법 적용이 불가능했다.

형법상 ‘건조물 침입 및 방실(房室) 침입죄’도 적용해 보려 했지만 이 독서실이 김씨의 소유여서 불가능했다.

어떻게든 김씨의 ‘파렴치한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다짐했건만 며칠을 고민해도 현행법상 처벌할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7월 서울 모백화점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던 사건의 판례도 찾았다. 하지만 이 백화점 관계자들 역시 처벌규정이 없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뻔히 눈에 보이는 범죄행위를 인지하고도 관련법규가 없어 처벌하지 못하는 현실. 검사인 그에게 지독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황검사는 “그 독서실을 다녔던 여학생들이 화장실에 갈 때마다 누군가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받았을 충격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며 “답답하지만 처벌할 방법이 없으니…”라며 안타까워 했다.

현실을 따르지 못하는 법. 이대로 둔다면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규정한 헌법규정마저 ‘사문화(死文化)’될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걱정이다.

이명건(사회부)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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