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등포署 김광섭씨,32년동안 시신2천구 감정

  • 입력 1998년 9월 27일 19시 58분


‘죽은 자와 죽인 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

서울 영등포경찰서의 만년 형사반장 김광섭(金光燮·58)경위는 살인사건 수사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한다. 66년 경찰에 입문한 이래 감식한 시체만 2천여구에 이를 정도로 살인사건 수사의 베테랑이다.

시체감식을 도맡아 ‘송장박사’란 별명을 지닐 정도로 험한 일에 매달려온 인생이지만 수사철학에는 인간미가 흐른다. 그래서 그는 변시체앞에서 “당신의 한을 내가 풀어주겠소”라는 혼자말을 건네는 습관이 있다.

물론 수없는 난관과 싸워야 했다. 살인범이라는 심증이 굳어도 증거가 없었던 경우도 많았다.

“툭 터놓고 며칠이고 용의자와 대화를 나눕니다. 내 나름의 인생사들, 어려웠던 경험들…. 서로 두서없이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용의자가 어느새 자백하게 되지요.”

수사과정에서 쌓인 정과 인간적 이해로 인해 김반장에게는 ‘아들’과 ‘조카’ 그리고 ‘여동생’이 생겼다. 모두 김반장의 수사대상이었던 살인범들이다. 이들 3명에게 돈도 보내고 편지도 주고 받는 세월이 벌써 10여년.

“돌봐주겠다고 약속했죠.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덕분에 휴가길은 늘 교도소 순방길이에요.”

그는 올해말 정년을 앞두고 10월초 미국으로 간다. 두어달쯤 ‘자비’로 공부할 예정.

“총기와 법의학을 공부하는 연수입니다. 총기 살인사건이 늘어나지만 전문가가 거의 없어요. 열심히 배워와 경찰을 떠나도 후배들에게 가르쳐줄 생각입니다.”

그는 ‘행정적’정년을 뛰어넘어 ‘송장박사’ 외길을 걷고 싶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