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시대 31/연봉제]달라지는 직장풍속도

입력 1998-09-22 19:04수정 2009-09-2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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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기업들이 연봉제를 속속 도입중이다. 2000년이면 1백대 기업 가운데 71개사 이상이 이를 시행하게될 전망.

월간 현대경영 6월호가 97년 매출액 1백대 기업을 대상으로 연봉제 실태조사를 한 결과 38개사가 연봉제를 시행중이었다. 또 연봉제 도입 시기는 △올 하반기 16개사 △내년 13개사 △2000년 4개사였다.

서구식 연봉제의 대대적인 도입은 샐러리맨들의 문화를 뿌리채 바꿔가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연공서열의 파괴. 업적과 능력만이 최고의 가치로 평가되므로 선후배나 입사동기란 말이 무의미해지고 직원들이 급속히 개인화하고 있다.

동원증권의 경우 입사 동기간 연봉차가 5천만원 이상인 경우가 생겼으며 사장이나 이사보다 연봉이 더 많은 직원들도 무려 15명 가량이 나왔다. 삼성전자소그룹의 경우에도 같은 직급의 입사동기간에 연봉 차이가 5백만원이 난다.

삼성전자 이모과장은 “옆자리 동료 연봉액수를 서로 모르며 소문만 듣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샘하기도 한다”면서 “월급 많이 받는 게 당연했던 직장 선배나 상사가 후배나 부하들과 어울려 술 한잔 사는 풍토도 연봉제 이후 크게 줄었다”고 서운해했다.

평생 한 직장에 몸담는 것을 자랑으로 삼아온 국내 기업의 전통 하나가 곧 깨질 조짐이다. 지난해 증권가에 연봉제가 도입되자 약정실력이 뛰어난 30대 대리나 과장들 가운데 ‘고임금 철새족’들이 등장했다. 일부는 더 많은 연봉을 찾아서, 일부는 스카우트 유혹에 못이겨 오랫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났다.

직장인의 일상생활 역시 달라지고 있다. 연봉제는 직장인의 근무시간뿐만 아니라 근무외시간까지 영향을 미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객과 저녁약속을 잡기도 하고 외국어나 컴퓨터 공부를 하느라 바쁘다.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뛰는 사람도 있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이모씨(32)는 요새 자신의 얼굴이 많이 두꺼워졌다고 느낀다. 기회있을 때마다 “제가 러시아 전문가입니다”라고 나선다. 대학 시절 러시아어를 전공한 경력도 애써 강조하고 “회화는 수준급”이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운다.

회사측이 내년부터 전직원에 대해 연봉제를 실시한다고 예고해 둔 때문이다. 이씨가 생각하는 연봉제란 동료들과의 팀웍보다는 ‘개인기’가 훨씬 더 중요시되는 제도라는 것. 그의 변신은 연봉협상에서 높은 몸값을 받으려는 나름대로의 ‘이미지 전략’인 셈.

식품회사 입사 8년째인 김모씨(33)는 올들어 큰 혼란에 빠졌다. 올초 첫 도입된 연봉제에서 그는 하위등급인 C급 판정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회사측이 아무리 “공정한 평가기준”이라고 얘기해도 좀처럼 억울함이 지워지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몇번 실패한 끝에 일단 잠을 두시간 줄였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영어학원으로 향한다. 업무상 영어는 별 필요가 없지만 ‘배워두면 근무평점에 유리하겠지’라는 생각에서다. 김씨에게 연봉제란 ‘한국에는 맞지 않는,불편한 옷’일 뿐이다.

〈이명재·송평인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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