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헛돈 쓰는 취로사업

동아일보 입력 1998-09-09 19:05수정 2009-09-25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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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실직자지원 차원에서 실시하는 공공근로사업이 곳곳에서 한심한 작태를 연출하고 있다. 출석만 부른 채 일당을 지급하거나 할 일이 없어 노래자랑으로 시간을 때우는 경우까지 있다. 아까운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부의 문제의식에 회의가 쌓인다.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현실에서 이 사업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얘기다.

정부는 지난 5월부터 올 연말까지 2단계에 걸쳐 약 30만명의 실직자에게 공공근로사업을 통해 총 1조4천4백44억원을 지출키로 했다. 이 자금 중 일부는 공무원들의 급여에서 떼낸 돈이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국민의 세금에서 충당된다. 이 막대한 자금이 대부분 풀뽑기와 휴지줍기 뒷골목청소 등 단순노동형 작업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뿌려지고 있다. 그나마 작업이 제대로 된다면 모르되 대부분 형식에 그치고 있어 전국의 취로사업장에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예산낭비가 한창이다.

작업목표가 없기 때문에 작업능률을 따질 수도 없다. 얼굴만 비치면 하루 2만5천∼3만5천원의 일당이 주어진다. 식대와 교통비는 별도로 지급된다. 파출부나 소규모 공장노동자의 노임을 감안할 때 근로소득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농촌인력이 노임 높은 공공근로로 빠져나가 농촌이 일손부족을 겪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업자금이 모두 실업자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남편이 직장을 갖고 있는데도 주부가 부업삼아 사업장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돈 나눠주기 위해 핑계로 만든 사업이라는 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정부가 예산을 허드렛일에 탕진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미국이 1930년대 대공황시절 테네시계곡을 막는 초대형댐을 건설함으로써 고용을 유지한 예를 정부는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미래에 꼭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설비를 만드는 건설적 사업에 실직인력을 투입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공공기관 업무지원 등 고학력 실업자들을 위한 사업도 배려해야 한다. 어려운 시기에 아까운 돈을 쓰면서 무엇인가 하나라도 의미있게 남기는 사업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선후진국 정부의 차이는 정책의 집행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정책을 정할 때 신중하게 하되 한번 정했으면 실시는 엄격해야 한다. 종합적인 기획없이 서둘러 근로사업 계획을 내놓은 것도 잘못이지만 형식적 집행으로 재정만 낭비하는 것은 더 나쁘다. 그만큼 시행착오를 범했으면 이제는 제대로 된 사업을 시행할 때다. 정부가 일부 개선대책을 내놓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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