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김영련/창문없던 지하셋방 시절

  • 입력 1998년 8월 4일 19시 46분


서른이 넘어 결혼을 했다.남편은 가진 것은 없으나 무척 진실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우리가 맨처음 신접살림을 차린 곳은 남의 집 지하실 셋방이었다. 대낮에도 불을 켜야 할 만큼 어두웠고 곰팡이 냄새로 눅눅했다. 그러나 정작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 지하실 방엔 마음껏 하늘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생각 끝에 벽에 크레파스로 커다란 창문을 그린 뒤 예쁜 커튼을 달았다. 커튼만 걷으면 마치 화사한 햇살이 부서지고 흰구름이 유유히 떠다니는 파란 하늘이 금방이라도 활짝 펼쳐지는 꿈을 꾸며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았다.

2년전 드디어 그렇게도 소망했던 조그만 집을 장만했다. 새집으로 이사하던 날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은 푸른 바다처럼 넓은 하늘을 창문을 통해 맘껏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요즘에도 남편과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 지인이랑 지난 날을 떠올리곤 한다. 지하실 방에 그린 창문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이미 지난 것들은 설령 그것이 괴로운 현실이었고 고생이었더라도 모두가 행복이요 기쁨이다. 나의 그림 창문은 다른 어느 집의 화려한 창문보다 몇 배나 값지고 고귀하다.

김영련<부산 해운대구 반여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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