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윤상호/영정사진 사랑나누기

  • 입력 1998년 7월 19일 19시 05분


PC통신 천리안 사진동호회 ‘나누는 사진’. 사진을 사랑하는 치과의사 방송국카메라맨 회사원 주부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다.

한홍록씨(37) 등 9명의 회원은 19일 오전 촬영장비를 챙겨 서울 천호동 암사동일대의 독거노인들을 찾아나섰다.

윤달에 수의를 마련해 주는 것이 효도의 하나이듯 의외로 많은 노인들이 영정 사진 찍기를 원한다. 이날도 사진촬영을 한 10명의 노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한가지 걱정을 덜었다”며 고마워 했다.

‘나누는 사진회’가 이같은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4월 “홀로 사는 노인들을 위해 작은 봉사활동을 해보자”는 한 회원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2평도 채 안되는 단칸방에 조명기구 카메라 배경판 등 장비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다보니 처음엔 모든 게 힘들고 실수투성이였습니다.”

회원들은 “다행히 대부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촬영을 끝낸 뒤 손수 만든 음식을 내놓으시거나 두손을 꼭 잡고서 문밖까지 배웅해준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4월 첫 촬영에서 벌어진 일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치매와 노환이 심했던 아흔을 넘긴 한 할아버지가 촬영을 마친 며칠 뒤 사진이 인화되기전에 숨을 거둔 것.

“영정 하나없이 외로이 빈소를 지키던 환갑이 지난 아들에게 액자를 건네자 ‘고맙다’며영정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모두가 안타깝게 지켜봤습니다.”

촬영을 마친 뒤 회원들은 PC통신에 그 날의 소감을 담은 시나 수필을 올리며 의견을 교환한다.

“요즘같은 때일수록 힘든 이웃을 돌아보는 작은 관심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오후 늦게서야 촬영을 끝낸 회원들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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