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헌법재판소 결정과 국회

동아일보 입력 1998-07-15 19:31수정 2009-09-2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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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서리 임명과 관련해 냈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각하했다. 총리서리의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국회의원이 그런 심판을 청구할 당사자 자격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각하를 결정한 것이다. 여러가지 평가가 나올수 있겠지만 헌재(憲裁)가 정치적 고려 때문에 헌법해석기관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헌재의 이번 결정은 정치권을 향한 주문을 담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총리서리 문제를 헌재에 가져오지 말고 국회에서 가급적 빨리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헌재는 총리서리의 합헌성을 인정한 것도, 위헌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도 아니다. 따라서 연립여당은 총리서리 체제를 마냥 끌고가려 하지 말고, 야당은 위헌이라는 정치공세만 계속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헌재 결정에 담겨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국회가 여전히 실종상태라는 데 있다. 5월30일 이래 의장단도 상임위원장단도 상임위원도 없는 ‘식물국회’가 오늘로 벌써 48일째다. 참다 못한 시민들이 국회를 직무유기로 고발할 정도가 됐다. 그런데도 3당 원내총무는 21일의 7개 지역 국회의원 재선거 보궐선거 이후에 국회를 정상화하고 총리서리 문제는 그 다음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야가 국회부재를 방치한 채 중앙당과 소속의원을 재 보선에 총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북한의 잇단 도발에 따른 대북(對北)규탄결의를 국회가 아니라 원내총무 3명의 이름으로 채택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제개혁과 민생보호에 관한 법안들이 기약도 없이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무엇보다도 내일 제헌절 50주년 기념행사마저 ‘식물국회’로 치를 판이다. 국회가 이 나라 최초의 헌법을 제정한지 반세기가 되는 날을 국회가 없는 채로 맞게 되는 것이다. ‘국회없는 제헌 50주년’은 국회의 수치이며 헌정사의 오점이다.

이렇게 된 마당에 원(院)구성을 비롯한 국회정상화가 오늘 중에 이루어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재 보선 직후에 곧바로 정상화하리라는 보장도 현재로서는 없다. 이와 관련해 본란은 여야가 각각 의장후보를 내정하고 의원들의 자유투표로 의장을 선출하도록 이미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여소야대 때문에 원구성을 미루어 온 여당이 이제는 자유투표마저 거부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여당부터 태도를 바꿔 재 보선 직후에 자유투표로 의장을 선출하고 국회를 정상화, 총리서리 문제도 최대한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그것이 헌재 결정을 존중하고 ‘국회없는 제헌 50주년’의 수치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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