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봉순이 언니(62)

  • 입력 1998년 7월 5일 19시 43분


―또 왜?

어머니가 겁이 더럭 실린 얼굴로 물었다.

―저어, 짱이…. 짱이 데리구 가믄 안될까요?

―뭐 짱이를? 아니 짱이는 왜 데리구 가니? 남자하구 여자하구 데이트하러 나가는 자린데. 이모두 너희 인사만 시키구 바루 이리루 오기루 했는데.

―짱이 데리구 안가믄 안 갈래요.

봉순이 언니는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언니는, 어머니의 말대로 쇠심같은 고집을 피우기 시작할 때 으레 그러듯이 두툼한 입술을 뾰죽히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지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마당 구석에서 공기놀이를 하면서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나는 그러지 않아도 남자와 여자가 선을 보는 게 어떤 것인지 몹시 궁금하던 차였으므로 좋아서 입이 헤벌어졌다.

―그래라, 그러면 짱이를 데리고 가라. 데리고 가!

어머니는 체념한 듯 말했다.

―엄마 나 무슨 옷 입고 갈까?

아까부터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나는 다방이라는 곳에 이제 들어가 보게 되었구나 싶은 마음에 기뻐서 헤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냥 갔다와, 조그만게 무슨 옷, 니가 선보니?

어머니는 신경질적으로 말하면서 수돗가로 날 데려가 손과 얼굴을 대충 씻기고 손으로 머리만 한번 대충 빗어주었다. 나는 그래서 집에서 입던 쫄쫄이 바지를 입고 색동 고무신을 신은 채로 언니를 따라나섰다.

봉순이 언니와 함께 양지다방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약속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모는 우리를 보고 일어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봉순이 언니가 언니니까, 그쪽은 형부뻘이 되는 사람이라 해야겠다. 그는 뭐랄까, 작고 단단하고 까뭇한 사람이었다. 낡은 쥐색 점퍼차림의 그는, 머리에 바른 기름때문이었을까 얼굴 전체가 콩기름을 바른 마루청처럼 번들번들 해보였다. 두 사람이 인사를 건네고 형부는 ‘모닝’을 시켰다. 봉순이 언니도 ‘모닝’을 시켰고, 어서 일어나라는 이모의 눈짓을 모른 척하고 봉순이언니 곁에 착 달라붙어서 나는 주스를 시켰다. 새콤 달콤한 ‘주스’를 마시면서 바라보니 형부라는 사람의 코끝이 조금 빨간 것이 좀 걸리긴 했어도 그런대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이었다. 봉순이 언니는 고개를 숙인 채 들지 않았다. 형부가 될 그는 후루룩, 후루룩 씩씩하게 잔을 불어 달걀노른자가 든 모닝 커피를 마시더니, 으으음 큰소리로 헛기침을 해댔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하면서 이모가 일어서자, 봉순이언니와 형부가 될 그가 일어섰지만 나는 일어서지 않았다. 쥬스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일어서기만 하면 이모는 나를 끌고 집으로 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글: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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