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강봉균경제수석 『재정적자 크게 늘려 경기부양』

입력 1998-07-02 19:18수정 2009-09-25 08:38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지금은 외환위기를 극복한 뒤 돈이 돌지 않는 동맥경화증, 부도기업이 정리되지 않는 신진대사마비 같은 고질병을 수술하는 본격적 경제구조개혁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금융 기업 공기업 노사의 4대 개혁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극복해야 합니다.”

1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나본 강봉균(康奉均)대통령경제수석의 화두(話頭)는 역시 ‘개혁’이었다.

―은행퇴출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개혁에 대한 반발과 구조조정의 진통이 만만치 않습니다만….

“구조조정 때문에 늘어나는 실업자보다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금융경색으로 중소기업이 도산하기 때문에 늘어나는 실업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은행들이 돈을 제대로 빌려주지 않아 망한 중소기업이 한두개입니까. 이들 업체로부터 나온 실업자가 1백만명이 넘어요. 개혁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수술을 중단하면 더 큰 고통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부실은행을 정리하고 선도우량은행을 만들어 은행을 정상화해야 실업도 줄일 수가 있는 겁니다. 개혁에 대한 반발이라고 하지만 이해당사자들의 기득권만 강조돼서는 안됩니다. 말없이 개혁의 고통을 참고 있는 다수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지방은행 퇴출로 지역경제가 마비된다는 주장도 지방은행 임직원들이나 하는 얘기예요. 고객이나 기업들은 오히려 우수한 우량은행을 파트너로 맞아 더욱 나은 금융서비스를 받게 됩니다.”

―개혁의 진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기업들이 나름대로 자구노력에 열중하고 있지만 재벌개혁에 아직 가시적 성과가 적습니다. 공직사회의 의식전환도 미흡해 규제철폐와 공기업개혁의 속도 역시 느립니다. 이 때문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관료조직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직접 나서고 있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경제부총리제를 부활시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하지만 김대통령은 관료들에게만 맡겨서는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노사문제는 노사정 합의체제를 통해 극복하려 하고 있지만 의식과 관행의 변화 속도가 느립니다. 노동법은 선진화했지만 법을 지키는 노동운동이 조기에 정착돼야 합니다.”

―IMF나 미국과 우리 경제정책을 조율하는데 문제는 없습니까.

“갈등요인은 없습니다. 다만 그쪽에서는 개혁의 속도와 범위가 IMF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오늘(1일) 청와대를 방문한 로버트 루빈 미국재무장관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습니까.

“우선 미국이 한국의 외환 안정을 계속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제체질이 약화되지 않도록 중소기업을 살리고 실업증가도 막기 위해 재정적자를 늘려야 한다는데 의견이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금리의 하향안정과 통화의 신축적 운용이 미국과 IMF에 부담될 것이 없다는 점도 확인했어요.”

―재벌기업간의 빅딜문제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시급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고, 정부가 삼성자동차 처리문제를 포장하기 위해 빅딜을 거론한다는 지적까지 있습니다만.

“이번에 자산부채이전(P&A)방식으로 퇴출하는 5개 은행을 아예 청산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예금대지급이나 고용문제 등 국민의 부담을 생각하면 함부로 이런 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채규모가 수조원에 이르는 5대 그룹 계열사가 부실화했다면 정리에 따른 부담이 없는 다른 회생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런 점에서 빅딜은 좋은 구조조정 수단중의 하나입니다. 선진국에서는 국적이 다른 기업끼리도 통합을 합니다.”

―5대 재벌은 빅딜에 소극적입니다. 정부가 여신규제 등을 통해 빅딜을 유도하겠다고 했지만 자금을 독식하고 있는 이들이 과연 움직일까요.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가 5대 그룹의 부당한 내부자금거래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55개 기업이 퇴출대상으로 판정됐습니다만 추가퇴출 유도계획은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5대 재벌 계열사를 포함해 퇴출판정을 받은 기업들은 이미 알려진 한계기업들이었다는 점에 대해 정부도 아쉬움이 많습니다. 정부는 5대 재벌 등의 부당한 내부자금거래를 철저히 조사해 부실계열사를 찾아낸 뒤 이를 퇴출시킬 계획입니다.”

―금융 및 기업의 부실과 이에 따른 국민부담을 초래한 책임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져야 할까요.

“1차적 책임은 경영진과 주주에게 있습니다. 주주들은 주식소각이나 감자(減資) 등의 방법으로 책임을 집니다. 경영진의 경우 명백한 과실 또는 불법행위로 부실요인을 가중시킨 증거가 있을 경우 손해배상 책임 뿐만 아니라 형사상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선의의 경영을 했더라도 퇴진은 불가피합니다.”

―기아자동차 처리계획은 언제 내놓습니까.

“곧 국제입찰 공고를 하게 됩니다. 참여자격이 있는 기업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함께 제시될 겁니다.”

―최근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거시경제상황을 살펴보면 성장은 지난 1분기중 마이너스 3.8%이고 상반기중 마이너스 4%로 추산됩니다. IMF와 합의했던 수치나 우리가 예상했던 수치보다 나쁜 수준입니다. 성장은 수출 소비 투자로 이뤄집니다. 수출의 경우 5,6월중 물량으로는 작년 동기보다 20% 늘었지만 금액으로는 오히려 줄었어요. 소비는 전년대비 12% 줄고 고정투자는 전년대비 20% 감소했어요. 설비투자는 40%나 줄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대비 고정투자 비중은 28%로 다른나라와 비교해서 아직도 높은 수준입니다. 그만큼 과거에 과잉투자가 이뤄져왔다는 얘기지요. 소비와 투자가 줄다보니 경상수지흑자는 상반기에만 2백억달러에 달하고 연간으론 3백억달러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내수소비와 35%나 줄어든 수입이 좀더 늘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심각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정적자를 감수하고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적자예산 편성에 대해서는 만성적 재정적자를 걱정하는 소리도 적지 않습니다만….

“IMF와 4월 합의한 재정적자규모는 GDP의 1.7%, 금액으로 7조8천억원 정도이지만 GDP의 3∼4%(13조∼18조원)까지 늘려서 경기를 부양할 방침입니다. 특히 고용효과가 있는 사업에 중점 투자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인플레를 초래하는 통화증발은 최대한 피할 것입니다. 가급적 공개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재정적자를 보전해야지요. 고용보험기금 등을 위한 채권발행으로 재정적자규모가 이미 GDP의 2%에 이르고 있어요. 이에 따라 앞으로 공개시장을 통한 재원조달규모는 생각만큼 많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밖에 정부는 내수부진타개를 위해 특별소비세인하와 임시투자세액공제확대 등 조세정책도 적극 활용할 방침입니다. 또 재정경제부가 이자소득세 인상을 검토중이지만 금융종합과세를 유보한 상태에서 조세원칙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담=배인준 경제부장]

〈정리〓임규진·천광암기자〉mhjh22@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