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편지]신미선/남편 퇴직하니 사치-허영 후회돼

  • 입력 1998년 6월 1일 20시 10분


▼남편이 퇴직하니 ▼

법정 스님의 칼럼에서 본 복진타락(福盡墮落)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서 보니 이제야 인생의 추이가 보이는 듯하다.

‘언젠가 우리 집에도…’라며 예상은 했었지만 남편의 퇴직 소식이 우울하게 전해졌다. 30대 후배들이 “꼭 계셔야 할 분이신데…”라고 위로를 건넸다. “위로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경쟁력을 갖추기에 저희들은 너무 굳어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잘 돌아가는 대기업을 다니며 남편들은 얼마나 윤이 났던가. 그들의 아내는 얼마나 많은 사치와 허영을 퍼뜨렸던가. 물론 나도 당시엔 사치와 허영의 동반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야 생각난다. 80년초 독일에서 10년 동안 살다 귀국한 언니가 명동을 돌아보고 “우리나라 여자들 이상해. 전부 대낮에 파티 옷차림이야”라고 했던 말이. 그뒤로 18년 동안 우리의 사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복이 다하면 굴러 떨어진다는 옛말처럼 난방올려 더워서 속옷차림으로 살았던 만큼 춥고 함부로 음식을 낭비했던 만큼 배가 허전하다.

처져만 있기에는 아이들과 고개를 떨군 남편이 불쌍하고 가장으로 나서자니 능력이 달린다. 복이 늘 내 곁에 머무르는 줄 알았던 지난날이 부끄럽다.

신미선(서울 양천구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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