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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5월 10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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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대란 재발 가능성
더욱이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수하르토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독점적 경제구조 해체를 골간으로 하는 IMF 개혁 프로그램을 진정으로 추진할 의사가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가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학생들의 정권퇴진 요구 시위는 바로 지난달 인도네시아 정부와 IMF가 3차 협상을 통해 합의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이행하는 초기단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의 장래를 한층 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학생 시위만으로 수하르토 정권이 쉽게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수하르토 체제에 대해 비판적이며 그의 하야를 요구하는 학생, 지식인, 이슬람교도 운동권, 중산층의 숫자가 늘고 있지만 이처럼 다양한 반정부 세력들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정치적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수하르토 체제의 버팀목인 군부가 이들을 지지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체제가 그대로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미 인도네시아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변혁을 예고하는 새로운 출발점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 제도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타협의 정치관행마저 없는 인도네시아의 권위주의 통치체제가 체제이행과정을 겪게 될 경우 대규모의 정치 폭력 사태를 수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향후 상황변화 여부는 인도네시아의 정치 경제적 장래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지역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네시아의 경제 파탄은 제2의 아시아 금융 대란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이는 외환위기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한국 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교문제 난민문제 그리고 민족주의와 고립주의의 대두로 인해 인접 국가들과의 정치적 갈등 및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인도네시아 내 화교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동남아 각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이 인도네시아 내 중국계에 대한 보호를 주장할 경우 양측 사이에 갈등이 야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위기를 피해 다수의 인도네시아 난민들이 인근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로 유입되어 역내 불안정을 고조시킬 가능성도 있는데 이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인도네시아에 강력한 민족주의와 고립주의가 대두되어 시장경제체제를 거부하거나 세계 해상화물의 40%가 경유하는 말라카 순다 롬보크해협 등 전략해상요충지에 대한 자국의 통제권을 주장한다면 국제적 긴장 상태가 조성될 수도 있다.
▼ 韓-印尼 공동노력 필요한 때
따라서 우리는 인도네시아 상황변화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인도네시아는 2억 인구의 동남아 최대 국가이며 한국의 주요 투자 교역 대상국이자 건설 수출시장이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사태 악화가 우리의 대외신인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이 인도네시아의 주요 채권국 중의 하나이며 인도네시아와 함께 IMF체제하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해 나가야한다는 입장을 감안하면 양국간 위기 타개를 위한 공동의 노력과 지혜가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배긍찬(외교안보연구원·아태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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