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전용구장 무엇이 최선인가]전문가 긴급좌담

  • 입력 1998년 4월 23일 19시 43분


《2002년 월드컵축구 주경기장 건설문제를 둘러싸고 지루하고 소모적인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관계장관회의는 두차례나 결정을 미루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다.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개입돼 시간을 허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서울 상암경기장 신축과 잠실경기장 보수, 인천 문학경기장 설계변경 중 어느쪽을 선택하든 월드컵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반드시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안고 있다. 과연 무엇이 최선인가. 관계 전문가들의 긴급좌담을 통해 진단해본다.》

[참석자]박우규이사(SK증건 리시치팀 이사·경제학박사)김남현소장(토석엔지니어링소장·건축사)조중연전무(대한축구협회 전무·월드컵조직위 조직위원)

▼조중연전무〓월드컵은 스포츠의 차원을 넘어서는 세계적인 행사입니다.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과 국민 통합성을 제고하고 경제적으로도 제2의 도약기를 맞기 위해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는데 대해 이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박우규이사〓한국개발연구원(KDI)보고서에 따르면 월드컵 개최로 인해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가 10조원에 이르고 고용 창출효과도 24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월드컵을 통해 20년간 흑자를 내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각국이 월드컵 개최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이유가 이러한 경제적 이득이 있고 국가를 홍보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김남현소장〓월드컵은 4년 후에 개최됩니다. 그 시점에 우리는 반드시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딛고 일어나야 하겠지요. 만일 그때도 제대로 극복 못한다면 너무나 심각한 것 아닙니까. 그때를 보며 희망을 갖고 달려갈 수 있는 계기가 분명히 마련돼야 하고 그것이 월드컵이라고 봅니다.

▼박이사〓지금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시대입니다. 정부의 신뢰도는 국제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IMF체제에 적응을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바로 정부신뢰도 문제입니다. 우리가 과거 정부의 약속을 현 정부에서 어기면 정부의 신뢰도라는 무형자산에 큰 해를 당할 것은 뻔합니다.

▼김소장〓월드컵 개최를 통해 각종 시설을 새로 건설하게 되면 도시 환경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잠실주경기장 건설에 참여했습니다만 8만명 수용의 경기장을 건설하는데 꼬박 7년이 걸렸습니다.

2002년 월드컵까지는 불과 4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경기장 시험가동 기간까지 따진다면 3년6개월밖에 없어요. 하루빨리 경기장 건설 문제 등을 마무리짓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야 합니다.

▼조전무〓81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했을 때도 국내 경제상황이 어려웠지만 88년 올림픽을 치르면서 경제 난국을 뛰어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은 입장수입만 1억달러에 이르고 관광수입은 4억4천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세계 TV 시청자만 연인원 4백억명선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주경기장조차 결정하지 못한 채 경제논리보다 정치논리를 앞세워 소모적인 논란만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박이사〓서울올림픽은 분명히 우리 경제의 도약에 계기가 됐습니다.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행사를 잘 치른 나라라는 인식이 세계 각국에 심어졌고 우리 상품에 대한 인식도도 높아졌습니다. 이보다 더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월드컵은 정부에서 조금만 지원하면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이 어려운 경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월드컵 개최를 포기하거나 등한시하면 오히려 경제를 걷잡을 수 없이 악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월드컵을 개최하지 못할 정도의 경제 운용 능력이라면 국제적인 신뢰도에 치명적인 상처를 받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조전무〓월드컵 개최는 국제적인 약속입니다. 현 정부도 개최를 약속한 상황에서 주경기장 건설을 놓고 서울이다 인천이다 하며 정치적인 계산이 깔린 소모적 논란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상황이지요.

축구인의 입장에서 월드컵 주경기장은 반드시 축구전용구장으로 신축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전국적으로 종합운동장이 1백73개 있고 야구전용구장은 18개나 있지만 축구전용구장은 포철구장과 광양구장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김소장〓FIFA의 규정을 따르자면 축구전용구장을 신축해야 한다는 게 원칙이지만 현재의 경제 상황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고 그래서 잠실주경기장을 개보수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 같습니다.

▼박이사〓김종필총리서리가 경기장 건설을 재검토하라고 했는데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라는 말이지 건설자체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국민의 정서와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효율적인 투자냐 아니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김소장〓건축하는 입장에서 경기장은 하나의 작품입니다. 작품이 어떤 형태로든 훼손당하면 원래의 목적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88서울올림픽의 상징물인 잠실주경기장을 월드컵 주경기장으로 보수해서 사용하는 입장에는 반대합니다.

만일 잠실주경기장을 보수해서 사용한다면 월드컵 개최 이후 다시 원상태로 복원시켜야 합니다.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들은 올림픽경기장을 기념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최근 상암경기장 신축을 사실상 배제한 상태에서 잠실주경기장과 인천 문학경기장을 비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둘 중 들어가는 돈만 따지면 잠실주경기장 보수쪽이 유리합니다. 문학경기장은 아직 주변 상황에 대한 투자가 더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월드컵 주경기장은 의미있는 시설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 짓는 방향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고쳐서도 가능하지만 원래 의도했던 기능을 만족시키지 못하지요. 국내 건축계에는 저비용으로도 효율적인 경기장을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박이사〓IMF사태가 언제까지 갈지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국민의 기가 살아있어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 비해 너무 초라한 대회가 되면 국민적 사기가 크게 떨어집니다.

월드컵 개최를 소홀히 하다 국가 이미지에서도 2등 국가로 낙인찍히고 무역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일본에 비해 전혀 손색없는 알뜰한 대회로 치러 국민의 기를 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조전무〓심지어 개최권을 반납하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월드컵에 대해 정부일각 등 일부 계층에서 월드컵을 너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월드컵을 훌륭하게 치름으로써 IMF사태를 극복하고 주경기장을 지어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자는 비전을 갖고 월드컵 개최를 추진해야 합니다.

▼김소장〓월드컵경기장 건설을 화려하지 않게 건축적으로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건축가들에게 능력이 있고 저비용으로 효율적인 신축이 가능합니다.

▼박이사〓우리 국민은 그동안 국가적 위기를 단결력으로 극복해 왔습니다. 정부에서도 국민을 단결시키는 행사로 월드컵을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어려울 때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부, 축구인만의 행사가 아닌 전 국민적 행사로 월드컵 개최를 추진함으로써 향후 한국에 큰 희망이 있다는 인식을 세계인들에게 심어줘야 합니다.

〈정리〓권순일·배극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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