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그곳에 가고싶다]전남 화순 가무래마을

  • 입력 1998년 4월 23일 07시 59분


산벚꽃이 온 산을 물들일 때면 내머릿속에 떠오르는 정겨운 마을 풍경하나, 전남 화순군 동복면 가무래 마을이 그곳이다.

바쁜 일상에 한줄기 숨통을 찾으러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돌아다니다 장승사진에 심취하게 됐는데 장대한 목장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십여년전 그곳을 찾았다. 지도와 자료사진 한장 달랑 들고 경사가 심한 비포장 산길을 곡예하듯 마을 초입에 도착하니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목장승 2개가 반가웠다. 카메라를 들고 앵글을 잡다 장승 저 뒤편에서 모내기하는 아낙들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사진 촬영은 잠시 잊어버리고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는데 모내기하던 아주머니가 저멀리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새참시간이었나보다.

어르신들 사이에 앉아 국수에 막걸리 몇사발을 대접받고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비틀거리며 논두렁을 나섰다. 예정에 없었던 술자리로 한잠 늘어지게 잔 뒤에야 장승촬영을 마쳤지만 장승보다는 그곳 정경과 시골아낙들의 인정이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어떤 책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이 생을 마감한 곳이 바로 가무래마을이라는 이야기를 읽고 나서 불현듯 그곳에 대한 강렬한 추억에 사로잡혔다. 그후 기회있을 때마다 마을로 향하는 채비를 꾸린다.

방랑으로 병들고 지친 육신을 이곳 한산사터에 누인 김삿갓. 어차피 인생은 방랑길이고 나역시 잠시 왔다 살다가는 여행자일진대 가무래 마을에 들를 때마다 한산사터 밭고랑에서 차이는 기와조각을 볼 때는 내가 잠시 김삿갓이 된 듯하여 삶이 무척 가벼워진다.

김성철(동부그룹 동부종합연수원 출판팀·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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