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훈/「앵벌이」보도에 애타는 父情

  • 입력 1998년 3월 30일 19시 58분


“혹시 아이가 앵벌이 조직원 밑에서 껌팔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 아이에게 지은 죄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요….”

미혼모가 낳은 아이가 산부인과 등을 통해 앵벌이 조직으로 넘어가 껌팔이 등에 이용되고 있다는 동아일보의 특종보도가 연이어 나간 뒤 대전에 사는 30대 중반의 남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문을 연 그는 지난 13년 동안 품고 살아왔던 얘기를 어렵게 털어놨다.

84년 1월. 스물 한살이었던 그는 지금은 남의 아내가 된 한 여인과의 사이에 건강한 사내 아이를 낳았다. 결혼할 입장도, 아이를 키울 형편도 못됐던 그는 여인과 논의끝에 아이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는 여자가 아이를 낳았던 서울 N산부인과에 아이를 좋은 곳에 보내 줄 것을 부탁하고 씁쓸하게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후 그는 다른 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뤘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늘 어린 생명을 내팽개쳤다는 자괴감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몇년 뒤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살고 있는 옛 연인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외국의 좋은 가정에 입양된 줄로 알았던 아이가 외국으로 입양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시간을 내서 아이를 찾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내와 자식들이 모르는 비밀을 꺼내놓기가 두려워 아이를 찾는 작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며칠 전 그는 미혼모의 아이가 산부인과를 통해 앵벌이 조직으로 흘러들어가 껌팔이에 이용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또 그 병원이 바로 13년 전 아이가 태어난 N산부인과라는 것도 확인했다.

“신문을 본 뒤 밤잠을 못이루고 있어요. 외국의 좋은 가정에 입양돼 행복하게 살아가기만을 기대했는데…, 어떻게든 아이를 되찾고 싶습니다.”

소리없이 흐느끼던 그는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이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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