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재호/한국은 아마추어의 나라

  • 입력 1998년 3월 20일 2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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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北風)파문이 우리의 문제로만 끝났으면 좋으련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한국문제와 관련있는 주변국들에 상당한 파장을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에게 19일 북풍사태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파트너로서의 한국에 대한 신뢰감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말 뜻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북풍사건 이후 미국관리들에게 한국은 더욱 못믿을 나라가 돼버린 것 같다. 그들의 눈에 한국은 ‘앞에서는 남북문제의 해결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국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남북문제쯤은 언제든지 팽개쳐버릴 수 있는 나라’로 비치고 있다.

사안이 미묘해 누구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은 사석에서 “긴장완화는 커녕 국내정치를 위해서라면 긴장조성도 불사할 한국과 과연 한반도문제를 더불어 논의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곤 한다.

한 관계자는 한국정부가 항상 한미공조를 강조해 왔음을 상기하면서 냉소를 감추지 않았다. “남북대화와 북―미관계의 조화 병행을 위해서는 한미공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해놓고선 뒤돌아서서 북한과 그런 식의 정치적 접촉을 시도했다는 점이 과연 옳으냐”고 물었다.

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한국정부는 언제나 미국이 한국 몰래 북한과 모종의 거래를 하지 않는지 극도로 신경을 써왔기 때문에 더 할 말이 없게 돼버렸다.

뿐만 아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문건이 유출되고 그에 따른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서투른 대응도 신뢰성을 잃게 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한심하다는 듯 “한국은 아마추어가 운전하는 만원버스같다”고 꼬집었다.

이래저래 ‘국가의 신뢰도’라는 자산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느낌이다.

이재호<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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