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42)

  • 입력 1998년 3월 12일 11시 18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10〉

저는 버럭 화를 내어보았지만 노파는 끈덕지게 말했습니다.

“고정하세요. 아씨! 잠깐 입을 맞출 뿐, 이야길 하거나 몸을 기대거나 하지는 못하게 하면 되잖아요. 그렇게만 하면 맹세를 깨뜨리지도 않고 이 값비싼 물건을 그냥 가져갈 수도 있잖아요.”

“여보, 할멈, 내가 왜 남의 물건을 공짜로 갖기를 원하겠어요? 돈이라면 얼마든지 있어요.”

그러나 노파는 제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아씨같은 부자가 그까짓 돈에 탐이 나 외간 남자와 입을 맞추지는 않는다는 것을요. 그러나 생각해보세요, 아씨. 아내를 잃고 외롭게 혼자 살아온 저 착한 젊은이가 여북했으면 그런 제의를 했겠어요.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면 알라의 보답이 있듯이, 사랑에 굶주린 자에게 사랑을 나누어준다면 그것 또한 알라의 보답이 있을 것입니다. 아씨처럼 젊고 순수한 분이야 물론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입 한번 맞추는 것쯤이야 사실 아무 일도 아니랍니다.”

이렇게 저를 꼬드겨대던 노파는 마침내 저의 귓전에다 대고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아씨, 외간 남자와 입을 맞추어보면 색다른 쾌감이 있답니다. 몰래 훔쳐먹는 사랑이 더 달콤하다는 말도 있잖아요.”

이 말을 들은 저는 갑자기 무슨 악마에 뒤집어 씌웠던지 몸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노파의 이 말 한마디가 저로 하여금 빠져나올 수 없느 구렁텅이로 발을 들여놓게 하였던 것입니다. 노파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씨, 쑥맥같은 여자는 남편을 만족시킬 수가 없답니다. 사랑도 해본 사람이 더 잘 한다는 것도 모르세요? 정말로 도련님을 즐겁게 해주려면 외간 남자와 입도 맞춰봐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자꾸 꼬드기자 저는 싫어, 싫어, 하고 도리질을 하다가 어느 틈엔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제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자 노파는 저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습니다.

“오, 귀여운 아씨! 마침내 허락하셨군요. 그럼 제가 자리를 비켜드리지요. 아씨가 부끄럽지 않게 말이에요.”

이렇게 말한 노파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노파가 나가자 저는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 눈을 감은 채 살짝 베일 한쪽 자락을 걷어올렸습니다. 그러자 사내는 베일 밑으로 제 볼에 입을 갖다대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제 입술에 입을 맞추었습니다만, 입을 맞추면서 그는 느닷없이 제 젖통을 와락 움켜잡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다른 한 손은 거침없이 저의 사타구니 사이로 들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놀란 저는 비명을 지르며 그를 밀쳐내려고 했습니다. 제가 비명을 지르자 흥분한 사내는 살점이 떨어져나갈 만큼 제 입술 한쪽 귀퉁이를 물어뜯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너무나 놀라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장이 나 있었습니다. 가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저의 앞가슴은 마구 풀어헤쳐져 있고, 아랫도리는 벗겨져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저를 부둥켜안고 노파는 울고 있었습니다만, 그 못된 상인은 가게를 닫고 사라져버린 뒤였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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