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홍성 풀무학교⑨]「더불어 사는 平民」배출

  • 입력 1998년 3월 9일 08시 06분


충남 홍성군 홍동면 팔괘리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이 학교에 들어서면 고개를 두번 갸웃거리게 된다.

우선 학교 이름이 적혀 있는 초석 하나만 있을 뿐 담이나 울타리가 없다는 점이다.

다음은 인성교육 학교로 널리 알려진 명성에 비해 전교생 78명의 ‘초미니 학교’라는 사실이 그 것이다.

봄방학을 앞둔 지난달 18일 오후 이 학교가 갑자기 소란해졌다.

“애들아, 오리 먹이 줄 시간이다. 오늘 당번 모여라.”

학생 대표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교정 여기저기서 운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던 학생 10여명이 금방 달려왔다.

학생들은 자신의 역할에 모두 익숙한 듯 곧바로 먹이를 줄 채비를 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거나 오리축사에서 사료통을 들고 나왔다.

학교 앞 5백여평의 논에 그물을 치고 2천여 마리의 오리를 기르고 있는데 모두 학생들의 손으로 관리하고 있다.

“수영아, 오늘은 네가 사료를 주는게 어떻니.”

한 남학생의 놀리려는 듯한 제의에 박수영양(20)이 장화를 신었다. 성큼성큼 논 한 가운데로 들어가 ‘구구’‘구구’ 소리를 내자 축사 주변에 몰려 있던 오리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수영이를 둘러쌌다.

논 여기 저기에 사료를 뿌려주자 통통하게 살찐 오리들이 먹이를 쫓아 뛰어다녔다. 1시간 쯤 지나 오리를 축사로 다시 몰아넣어야 할 차례.

수영이가 뒷걸음질치면서 먹이를 조금씩 뿌려주자 오리들이 줄지어 축사로 따라 들어갔다. 나머지 학생들도 달아나는 오리들을 몰아넣었다. 수영이는 옷에 오리똥이 묻어 냄새가 나는데도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다.

풀무학교는 40년 전인 58년 기독교정신에 바탕을 둔 농촌교육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한 뒤 63년 각종학교로 인정받았다.

‘녹슨 쇠나 무딘 날을 불에 달궈 단단한 연장으로 만든다’는 뜻이 담긴 풀무학교. 우두머리도 꼴찌도 없는 세상을 이끌 ‘더불어 사는 평민’(교훈)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 만큼 모든 결정은 교사와 학생이 의논해서 결정한다.

학문으로 머리를, 신앙으로 가슴을, 노작(勞作)교육으로 손을 단련시킴으로써 전인교육을 지향한다. 교육과정은 일반교과 60%, 자유교양과 실습시간이 40%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철저히 배격한다. 그렇다고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다. 13명의 교사들이 78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수준별 개별수업이 가능해 학습효과가 훨씬 높다는 설명이다.

풀무학생은 전원 기숙사 생활이 원칙. 선후배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어 가족같은 분위기다. 동료가 큰 잘못을 하면 반성하는 뜻에서 모두가 단식을 하기도 한다.

학교 앞에는 실습지가 있고 논과 채소온실, 화훼온실에서 학생들은 자기 손으로 벼 채소 과일 화초 등 농산물을 가꾼다. 교실을 나서면 주위 논밭이 바로 ‘열린 교실’이다. 78년 오리를 이용한 유기농법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보급하기도 했다.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로 기숙사 부식을 조달하기 때문에 식단이 항상 싱싱하다. 자신들이 가꾼 농작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신기한지 식욕도 왕성하다는게 학교측의 설명.

주현신양(18)은 “처음에는 논 밭에서 일하는게 힘들어 싫었다”며 “그러나 지난해 여름 김천의 덕천포도원에서 2주일 동안 현장실습을 하면서 땀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한 뒤부터는 농사일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제빵실 목공실 탁구실 과학실 등을 갖춘 본관 옆 건물은 동아리 활동공간. 또 매주 한시간 명사(名士)들을 초청해 강의를 듣는 ‘문화시간’은 풀무가 자랑하는 명강좌가 됐다.

학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갓골은 풀무학교 졸업생들이 꾸려가는 자연식품 재생비누제조공장 신용협동조합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홍성신문 등이 모인 곳. 이 지역 공동체 생활의 구심점이다.

풀무는 ‘작은 학교’를 고집한다. 정부의 모든 지원을 거절하기 때문에 재정난이 심각하다. 그러나 교사들은 박봉과 격무를 올바른 교육자가 되라는 채찍으로 여기고 있다. 정부지원을 받으면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고 학생이 많아지면 전인교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집불통’ 학교로 통하기도 하지만 풀무의 성공 사례를 배우려는 문의가 끝이지 않고 있다. 풀무학교 연락처 0451―33―3021

〈홍성〓이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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