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페레그린 안드레 리]『한국,주식으로 빚갚아야』

  • 입력 1998년 2월 25일 19시 56분


“그렇게 허장성세일 줄은 몰랐습니다. 한국 재벌그룹의 천문학적 부채규모야 익히 알고 있었죠. 그러나 비상장기업 역시 빚더미에 올라있었고 공개된(상장기업의) 부채비율은 실제 그룹부채액의 70%밖에 되지 않았어요.” 안드레 리는 지난해 1월 한국 재벌기업의 부채구조 개선을 상담하기 위해 기업들의 재무상태를 처음 들여다보고 놀랐던 심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몇몇 재벌총수를 만나 “빚을 주식으로 갚아 재무구조를 개선하라”고 건의했다. “채권자에게 부채의 일부를 주식으로 갚아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증자를 하세요. 빚의 일부가 주식형태로 채권자(국내외 은행)에 넘어가면 부채의 원금이 줄지 않습니까. 물론 상당수준의 지분이 채권자에게 넘어가 소유권이 넘어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외국기업이 회사 한두개쯤 인수하는 거야 불가피한 상황 아닌가요.” 이렇게 설득했지만 재벌총수들은 한결같이 “곤란하다”고 답했다. 기업이 외국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불과 1년도 채 안된 지난해 말부터 일부 재벌그룹이 ‘부채의 자기자본화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한국기업의 속사정을 알게 된 직후 그는 한국에 금융위기가 닥칠 것을 예상했다. 부채 자체도 문제지만 금융계는 외환시장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전망했고 정부도 준비없이 자본시장을 개방해 붕괴를 재촉하고 있더라는 것. “외국딜러들은 원화가치폭락을 예상하고 여건만 조성되면 원화를 투매할 기세인데 정작 정부와 금융계는 99년 채권시장이 개방되면 외국자본이 유입돼 외환수급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더라구요.” 그는 “관치금융에 길들여진 한국금융시장은 급격한 시장개방에 앞서서 위험관리나 신용평가전문가 양성에 힘을 쏟았어야 했다”며 “종금사 허가를 남발한 것도 문제지만 이런 과정없이 종금사에 국제금융업무를 허가한 것은 성급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조속히 벗어나는 길은 주식 일부를 채권자에 넘기고 빚을 상쇄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뉴욕외채협상으로 상환시기를 3년가량 늦춰 위기를 넘겼을뿐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외채이자만해도 올해 1백억달러, 내년엔 1백50억달러인데 무역흑자로는 이자 갚기도 힘듭니다. 외국기업의 직접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어디 낙관할 수 있는 상황입니까.” 채권자인 외국은행들이 현금과 다름없는 원리금 대신 매력을 잃은 한국기업의 주식을 선뜻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은 뻔하다. 더욱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채권자들의 이익을 절충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의지를 갖고 미국 유럽 일본정부와 채권은행단을 설득한다면 가능하다는 것. 그는 한국 기업문화의 장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승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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