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세요]한국시리즈 첫 만루홈런 김유동씨

  • 입력 1998년 2월 2일 19시 39분


OB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6차전이 벌어졌던 82년 10월12일 동대문구장. 4대3 간발의 차로 앞선 OB의 9회초 공격 2사만루. 5차전까지 3승1무1패로 앞서있는 OB가 1승만 추가하면 원년 챔피언에 등극할 순간이었다. 상대투수는 당시 최고의 왼손 투수로 꼽히던 삼성의 이선희. 초구를 통타한 볼이 ‘딱’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왼쪽 펜스를 훌쩍 넘어갔다. 한국시리즈 첫 만루홈런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바로 이 만루홈런의 주인공 김유동씨(44). 그는 이 한방으로 최고의 스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후 16년. 그의 현 직함은 자유민주연합 인천 부평을 지구당 위원장.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아직은 생소하다. 그의 생각은 어떨까. “선수는 관중의 환호를 받지만 정치인은 유권자의 환호를 찾아다니죠.그러나 운동선수가 태극마크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 정치인이 금배지를 따려고 힘쓰는 과정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말문이 막힘이 없다. 제법 정치인 티가 난다. 그는 96년 4.11총선때 성급하게 뛰어들어 1만여표를 얻은채 한차례 ‘물먹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25년간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 왔어요. 질 수도 있는 거죠. 동계훈련하는 기분으로 다음을 준비중입니다.” 그의 프로생활은 굵지만 짧았다. 83년 허리부상을 둘러싼 코칭스태프와의 불화끝에 84년 삼미로 옮겼지만 어두운 터널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85년말 은퇴할 때는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야구장쪽으로는 소변도 안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1년여의 방황.다시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친구의 빚보증을 섰다 전재산인 아파트 한채마저 날렸다. 손에는 달랑 8백50만원뿐. 그러나 살아야했다. 서울 영동시장 한쪽에 5백만원짜리 방 한칸을 얻어 네식구가 새우잠을 자며 야채장사를 시작한 게 88년. 물건을 하러 인근 도매시장을 들렀을때 “김유동씨 아니세요?”라며 반기는 팬을 애써 외면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자신을 사랑해준 팬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는 그들로부터 ‘진짜 장사’를 배웠다. “고마운 분이 많았어요. 덕택에 빨리 자리를 잡아 곧 식당을 차릴 수 있었죠.” 식당을 몇번 옮기다 93년 부평에 터를 잡았고 고향이 충남 서산이라는 연이 닿아 자민련에서 정치입문을 하게 된 것. “식당을 운영하며 서민들의 아픔을 새삼스레 알게 됐죠.” 운동선수출신인 그는 “돈 안 쓰는 선거를 통해 페어플레이를 펼치는 정치인 김유동을 지켜봐주세요”라며 활짝 웃는다. 〈김호성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