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26)

  • 입력 1998년 1월 30일 19시 59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94〉 왕자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한 굉음이 하늘에서부터 일어나더니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는 이가 있었습니다. “듣거라, 백성들아! 불을 숭배하는 짓을 그만두고 인자하신 신 알라를 경배하라!” 이 소리를 듣고 겁에 질린 도성 사람들은 왕에게로 몰려갔습니다. “저희들이 들은 그 무서운 소리는 무엇입니까? 저희들은 무서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혹시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그까짓 괴상한 소리에 무서워하거나, 신앙심이 흔들리거나, 올바른 신앙을 의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아버지의 이 말에 도성 사람들은 안도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으로 불을 숭배하였습니다. 그후 일 년 뒤, 그 무시무시한 부르짖음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렇게 해마다 한번씩 그 무시무시한 경고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만, 사람들은 사악한 의식을 그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율법에 어긋나는 짓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하늘의 심판이 내리고 말았습니다. 알라의 강림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검은 돌로 변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들까지도 말입니다. 그때 마침 알라께 기도를 올리고 있었던 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천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나는 열심으로 기도하고, 단식하고, 코란을 외며 나날을 혼자 보내고 있습니다만, 이 죽음의 도시에서 말동무 하나 없이 혼자 산다는 것은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랍니다.” 왕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몹시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적막한 도시에서 혼자 살아온 그분의 오랜 고독을 생각하며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그분을 이미 마음 속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밤이 깊었으므로 저는 왕자님의 잠자리를 돌보아드렸습니다. 그분이 잠자리에 들자 저는 그 발치에 누웠습니다만, 너무나 기뻐 제가 어디에 와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만, 저도 왕자님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은 그 아름다운 왕자님의 발치에 누워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오랜 세월을 두고 저주받은 검은 돌들 사이에서 외롭게 혼자 살아왔던 그분의 입장에서 보면, 모처럼만에 살아 숨쉬는 사람이 발치에 누워 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신기하게만 느껴져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잠을 이루지 못하여 뒤척거리고 있었고, 그런 그분의 발치에 웅크리고 누운 저는 마음 속으로 기도했답니다. “오, 자비로우신 알라시여! 왕자님으로 하여금 욕정을 불러일으키시어 오늘밤 왕자님께서 저를 범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다음 순간, 거짓말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거리던 왕자님이 문득 손을 내밀어 저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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