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07)

  • 입력 1998년 1월 9일 08시 23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75〉 꽃같이 아름다운 마흔 명의 처녀들에 둘러싸인 채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미처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처녀들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당신은 저희들의 상전이시랍니다. 저희들은 당신의 종이요 노예일 뿐이니, 무엇이고 분부만 내리십시오.” 처녀들이 이렇게 말했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내 표정이 재미있는지 처녀들은 더없이 맑고 아름다운 소리로 까르르 웃었습니다. 그 웃음소리가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웠던지 흡사 숲 속의 새들이 일제히 노래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윽고 처녀들은 내 앞에 식탁을 차렸습니다. 식탁에는 갖가지 산해진미가 가득히 놓였습니다. 나는 처녀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처녀들은 나를 위하여 저마다 맡은 바를 했습니다. 물을 데워 내 손발을 씻겨주는 처녀가 있는가 하면, 옷을 갈아입혀주는 처녀가 있고, 셔벗 수를 만들어 먹여주는 처녀도 있었습니다. 처녀들은 나를 위하여 이렇게 시중드는 것이 더없이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내 손발을 씻겨주고 몸단장을 시킨 뒤 처녀들은 나를 둘러싸고 앉았습니다. 이제 그녀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라도 들려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그녀들을 둘러보며 나는 말했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꽃밭에 앉은 것만 같은 걸.” 내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처녀들은 일제히 까르르 웃었습니다. 그 즐거운 웃음소리가 듣기 좋아 나는 다시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흡사 꽃밭에 뛰어든 위험한 멧돼지 같고.” 그러자 처녀들은 다시 떽데구루루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 즐거운 처녀들에 둘러싸여 나는 해가 질 때까지 웃고 떠들고 하였습니다. 밤이 되자 처녀 몇 명은 촛불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다른 몇 명의 처녀들은 향기로운 화초며, 싱싱한 과일이며, 온갖 종류의 과자들을 풍성히 차려놓았습니다. 그와 더불어 향기로운 술도 날라왔습니다. 휘황한 불빛 아래 둘러앉아 우리는 향기로운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술이 오르자 어떤 처녀는 노래를 부르고, 어떤 처녀는 류트를 연주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술잔은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더없이 즐겁고 흐뭇하여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것이 정말 인생이야! 인생에 유일한 한이 있다면 청춘이 가버리는 것 뿐이야!” 꽃같이 아름다운 마흔 명의 처녀들을 데리고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는 동안 어느덧 밤도 깊어졌습니다. 술기운에 얼굴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처녀들은 말했습니다. “우리의 주인님, 이제 주무셔야 할 시간입니다. 저희들 중에서 오늘밤 당신의 잠자리 시중을 들 상대를 골라 주세요. 그런데 한가지 알아두셔야 할 사실은, 오늘 밤에 당신이 고르신 처녀와는 사십 일이 지나기 전에는 다시 함께 주무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밤에 간택되지 못한 서른아홉 명의 처녀들도 모두 당신의 품에 안길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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