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 라이트]디자이너 정구호

  • 입력 1998년 1월 4일 20시 29분


아트디렉터 요리사 인테리어컨설턴트 그리고 패션디자이너. 지난해말 서울 청담동에 오픈한 패션숍 ‘KUHO’의 디자이너 정구호씨(36)의 경력은 다채롭다. 하나같이 만만치않은 의식주 전문분야를 두루 섭렵한 셈. “한 우물을 파는 쟁이도 존경받아야 한다고 믿지만 저는 항상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흥미를 느낍니다. 지금껏 해온 여러 분야가 미적인 감각에서 통하니까 아이디어 폭이 넓어지는 장점도 있죠.” 낡은 청바지와 줄무늬 남방, 손가락으로 대충 빗질한 머리와 뾰죽뾰죽 솟은 턱수염의 독신남자.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는 ‘KUHO’의 단아하고 매혹적인 백색 공간과 묘하게 어울린다. “미국서 대학졸업후 뉴욕타임스지 자회사인 북 오브 더 먼스에서 연봉 3만달러의 아트디렉터로 취직했습니다. 흥미를 못느껴 2년만에 그만두고 식당과 카페를 하게 됐어요. 특별히 요리를 배운 적은 없지만 한번 맛본 음식은 대충 비슷하게 해내는 감각을 믿었죠. 돈도 아낄 겸 손수 했던 실내장식이 멋지다며 디자인 의뢰가 밀려와 자연스레 인테리어 일도 겸하게 됐죠.” 서울 출신 3남1녀 중 장남. 이 땅에서 맏아들로 태어난다는 것은 내 생각대로 살기 힘들다는 뜻이다. 원래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남자가 할 일이 아니다’는 집안 반대로 제 길 찾기가 수월치 않았다. 혼자 무던히 애쓰던 중 대입시에 실패, 재수하던차에 욕심이 생겼다. 부모님을 설득해 82년 미국행, 그래픽전공으로 휴스턴대를 거쳐 뉴욕의 미술학교 파슨스에 편입했다. 쟁반닦이부터 시계노점상까지 닥치는대로 일했고 틈틈이 패션쪽 수업을 했다. 강의보다 도시로부터, 또 세련된 뉴요커로부터 멋에 대해 배운 시기였다. 비즈니스와는 거리가 먼 줄 알았는데 요리와 인테리어쪽에서 일할 때 수입은 연봉의 세배이상. 별모양 계란 프라이, 전과 야채로 만든 신선로 등을 선보였던 그의 가게는 뉴욕일간지 데일리 뉴스에 맛있는 집으로 소개될 정도였다. 96년 6월 귀국. 재료는 우리 것이지만 서양식으로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세계화한 한국요리식당을 차리고 싶었다. 다시 호주로 건너가 3개월간 요리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돌아와선 패션디자이너로 변신했다. “한 모임에서 디자이너 이영희씨를 만나 ‘마흔살 넘어 가게를 냈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 꿈이 되살아났어요. 옷에 늘 관심이 많았거든요. 고민 끝에 늦은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유행과 상관없이 입을수록 편한 옷을 만드는 게 바람. 아직도 꺼지지 않은 그의 열정은 무궁무진한 삶의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다. 15일 막이 오르는 연극 ‘레이디 맥베스’의 무대의상을 맡았고 영화의 미술감독에도 도전할 계획.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실패하면 어떡하느냐는 거죠. 하지만 노력하면 크든 작든 꼭 얻는 것이 있죠. 정말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돼도 하고 싶은 일은 해봐야 후회가 없죠.” 그에게 사는 것은 꿈꾸는 일에 다름아니다. 〈고미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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