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국민이 본격적으로 체감하게 될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는 기업도산 실업자증가 물가폭등 등 경제 현상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국민 개개인에게 가해지는 경제적 압박과 부담이 커지면서 상실감 좌절감이 확산하고 외국의 사례에서 나타나듯 개인파산 범죄증가 등 각종 사회불안요소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사회공동체의 기본단위인 가정에도 상당한 파란이 밀어닥칠 것이다.
가족공동체의 위기는 곧 가시화할 대량실업사태에서 시작된다. 가장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면 그 가정은 가장 큰 소득원과 정신적 지주를 함께 상실하는 것과 다름없다. 소득은 크게 감소하며 가장은 가장대로, 식구들은 식구들대로 방황하고 불안해 한다. 은행 등에서 빌린 빚 걱정도 태산같다. 가정불화의 가능성은 높아지고 끈끈했던 가족간의 결속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의 예측대로 1백만명의 실업자가 발생한다면 4인가족 기준으로 무려 4백만명의 국민이 이런 고통아래 놓이게 되는 셈이다.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전통적 가족의 의미는 우리 사회에서 전부터 퇴색해 가는 추세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혼자 사는 가정’이 8가구중 1가구에 이르고 이혼율의 증가로 부모 가운데 어느 한편만 있는 편부모가정이 74만가구나 된다. IMF체제는 가뜩이나 흔들리는 가정의 틀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가족의 파편화 현상을 가속화할지도 모른다.
가정은 가장 기초적인 경제주체인 동시에 사회 전반의 도덕과 윤리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그에 바탕을 둔 기업과 사회의 생산성 저하가 불을 보듯 뻔하고 그토록 바라는 경제회생 시기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 경제난국 시대에 새로운 가치와 덕목으로 떠오른 근검절약의 실천도 결국 가족이 맡아야 할 일이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이뤄지는 내핍생활이야말로 국가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가장 확실한 원동력이다.
위기일수록 가정의 역할은 더없이 소중하다. 고개숙인 아버지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다시 힘차게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가능하다. 가족 모두가 동반자의 자세로 서로를 격려하고 용기를 준다면 가정은 웃음을 되찾고 깊은 불황의 터널도 생각보다 빠르게 벗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가족의 진정한 가치에 다시 눈을 떠야만 한다. 가족공동체가 밝음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민간 차원의 사회운동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앞으로 불가피해질 맞벌이시대에 대비, 여성의 취업기회를 보다 넓히고 육아부담을 줄여주는 지원책도 함께 강구해야 한다. 가정이 살아 있어야 경제도, 나라도 다시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