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88)

  • 입력 1997년 12월 19일 07시 08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56〉 『오, 주인님, 저의 이야기는 앞서 들어보신 두 분 스님들의 이야기와는 좀 다릅니다. 두 분의 경우는 불행한 운명이 뜻밖에 찾아오지만, 저의 경우는 제 스스로 불운을 불러들이고 스스로 마음에 화를 입혀 마침내는 수염을 깎고 한쪽 눈을 잃어버렸다 할 것입니다. 부디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여주인 앞으로 나선 세번째 탁발승은 이렇게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인님, 사실은 나도 일국의 군왕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아지브 빈 하지브, 하지브의 아들 아지브란 뜻이지요. 아버님께서는 더없는 선정을 베푸셨으니, 모든 백성을 차별없이 공평하게 다루었습니다. 따라서 나라는 더없이 평화롭고 부강했습니다. 내 고국의 수도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언제나 눈을 들어 보기만 하면 망망대해가 눈 앞에 펼쳐져 있곤 했습니다. 나는 바다를 무척 좋아했고, 특히 배를 타고 바다를 여행하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하였습니다. 게다가 바다 건너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오래 된 성채와 요새가 있는 아름다운 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많은 선박들을 보유하고 계셨으니, 상선 오십 척, 유람선 오십 척, 그리고 전쟁에 대비하여 갖가지 무기들을 갖춘 전함이 백오십 척이나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까닭없이 가슴이 답답하여 배를 타고 바다를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배 열 척에 부하들을 태우고 한 달 분의 식량을 실은 다음 닻을 올렸습니다. 스무날을 잡고 인근의 크고 작은 섬들을 유람할 작정이었습니다. 바다로 나오니 그 답답하던 가슴도 활짝 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아름다운 성채가 서 있는 섬들을 둘러보면서 우리는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항해는 밤낮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밤, 사나운 역풍이 몰려오면서 집채만한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높은 파도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불원간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젠 끝장이라고 생각한 선원들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향하여 나는 호령했습니다. 『이런 처지에 이르러 비겁한 본색을 드러내는 자는, 비록 위기를 벗어난다 하더라도 칭찬받지 못하리라!』 그리고 나는 서둘러 돛을 내리게 하고 부서진 마스트를 밧줄로 묶게 하는 등 배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점점 더 사나워지고, 파도는 집어삼킬 듯이 연거푸 몰아닥쳤습니다. 나는 알라께 기도를 드리고 구원을 빌었습니다.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질풍은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태양은 더없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그러나 배와 선원들은 밤 사이에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섬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 섬에다 배를 대고 뭍으로 기어올라갔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요리를 하여 배불리 먹으며 이틀 동안을 쉬었습니다. 그 이틀 동안 신하들은 배를 수리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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