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사회는 세계적으로 찾아 보기 드물다.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인류문화사를 대표하는 종교가 함께 뿌리를 내렸으며 선사(先史)시대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무속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19세기 이후 탄생한 민족종교도 만만치 않은 교세를 과시한다. 시기적으로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지역적으로는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종교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외국의 경우 대개 국민 다수가 믿는 국교가 있고 나머지 군소 종교들이 그 뒤를 따르는 양상을 보인다. 우리 나라는 국교가 없는 대신 여러 종교들이 각자 치열하게 세력확대를 꾀하는 모습이다. 다종교현상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시달려온 민족사를 반영한다든지, 외래 종교에 너그러운 민족성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지적이 설득력을 지닌다
▼한국을 찾은 외국의 종교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종교상황은 중요한 연구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이들은 여러 종교가 한국 사회내에서 어떻게 갈등 없이 공존하는지 호기심을 나타낸다. 종교란 기본적으로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종교 때문에 전쟁까지 벌이는 일도 종종 있다. 우리에게도 종교간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엊그제 서울 성북동에서 열린 한 불교사찰 개원식에 김수환추기경이 참석, 축하인사를 했다. 국내 천주교를 대표하는 추기경이 다른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일에서 화해는 결국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다. 추기경의 이번 방문이 종교인에게 흐뭇함을 선사했듯이 사회 전체에 화해정신이 널리 퍼진다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