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주부들]생활공간 설계사 이수희씨

  • 입력 1997년 12월 11일 08시 44분


새벽 5시반 아직은 밖이 어둑어둑한 시간, 주부 이수희씨(40·경기 고양시 일산)의 손놀림은 분주하기만 하다. 아침밥 하랴, 보람(중1)이와 민수(초등4)의 도시락 준비하랴 바쁜 탓도 있지만 등교후에도 한숨돌릴 새가 없다는 점이 다른 주부와 다르다. 『청소와 설거지 등 집안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노트북 컴퓨터를 챙겨 일 나갔다가 아이들 하교전 귀가합니다. 전업주부로 있다가 일년전부터 인테리어 관련 일을 시작했는데 부엌가구의 설계부터 시공까지 책임지고 해내는 1인대리점이자 일반가구와 소품 선택 등을 도와주는 생활공간 설계사라고 할 수 있죠』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그는 지난해 10월 바로크가구에서 바로크아티스트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1기생으로 입사했다. 한달간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고 색채를 입히는 작업을 배우고 일을 시작했지만 처음엔 생각대로 도면이 안나오고 밤을 꼬박 새우며 간신히 완성한 설계도가 실수로 날아가는 등 시행착오도 많았다. 『부엌가구야말로 살림을 해본 주부가 설계하는 것이 유리해요. 고객의 집을 직접 방문해 상담하고 그 자리에서 도면을 만들기 때문에 주부들이 번거롭지 않다며 좋아합니다』 그가 사는 일산에는 전원주택단지가 있어 신축건물이 많고 그만큼 수요가 있다. 고객을 대하는 것이 처음엔 힘들었지만 술대접 식사대접 대신 일로 승부한다는 자세로 버텼다. 한번으로 안되면 열번이라도 만나 고객을 만들었고 그 인연이 지속될 수 있도록 일에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저이에게 맡기면 믿어도 된다」는 신용이 쌓였다. 본사가 「흑자부도」를 내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고객이 그를 밀어줬다. 시공이 완벽하게 될 때까지 지켜보는 책임감도 한몫을 해서 한달에 1천5백만원에서 2천만원 정도 매출을 올리는데 매출액의 10∼20%가 그의 수입. 『제일 큰 보람은 내가 한 일에 대한 성취감입니다. 따로 자본이 필요없고 땀흘려 일한만큼 수입을 얻어 좋구요』 매주 한번 사무실에 출근하고 나머지 시간이 자유로운 것이 장점. 발로 뛰는 직업인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고 원하는대로 설계해가도 수없이 퇴짜를 놓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을 상대하지만 이제는 여유가 생겼다. 『일을 하면서 삶을 배워요. 대부분 주부들이 일을 원하면서도 막상 뛰어들 엄두를 못내거나 일을 시작해도 작은 고비에 쉽게 포기하죠. 하지만 어떤 일이든 안정궤도에 오르기까지는 고통이 따르는 법, 해내고야 말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고미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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