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80)

  • 입력 1997년 12월 11일 08시 44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48〉 붓을 든 나는 일필휘지의 흘림체로 이런 시를 썼습니다. 시간은 바야흐로 위대한 자에게 준 선물을 기록하도다. 그대보다 훌륭한 선물을 기록한 자는 없으리. 알라시여! 그대를 잃고 만백성이 고아가 되지 않기를! 그대는 행복의 어머니, 인자하신 어버이. 이렇게 쓰고난 나는 계속해서 보다 우아한 곡선을 한 꼬불꼬불한 라야니 서체로 이렇게 썼습니다. 그대는 모든 땅에 갈대붓을 들고, 한번 붓을 놀리면 세상은 봄볕으로 가득해진다. 그대 손가락 놀림에 불행한 자의 얼굴에 미소를 되살리고, 그대 자비에 비하면 나일강 따위는 하잘것 없어라. 그밖에도 나는 단정한 스루스 체, 나스후 체, 투마르 체, 그리고 주로 궁중에서 쓰는 무하카크 체 등의 서체로 길고 긴 시를 써내려갔습니다. 다 쓰고난 나는 두루마리를 말아 관리에게 내어주었고, 관리는 그것을 들고 가 왕에게 바쳤습니다. 두루마리를 펼쳐본 왕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갖가지 서체를 섞어 써내려간 한편의 긴 시가 씌어져 있었는데, 그 시도 시지만 필체가 너무나 뛰어났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왕은 흥분된 목소리로 신하들에게 외쳤습니다. 『오!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명필이다. 정말이지 나는 이렇게 호방하면서도 우아한 글씨를 여태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시를 쓴 사람을 찾아라. 그에게 아름다운 예복을 입히고, 암탕나귀에 태워 나에게로 데리고 오도록 하라. 이런 명필을 맞이하는 나의 기쁨을 표하기 위해 악대를 앞세우고 말이다』 왕의 이 말을 들은 관리들은 그러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걸 보자 왕은 역정을 내며 말했습니다. 『내가 명령을 내리는데 왜들 웃고 있느냐? 내가 이 글씨를 잘못 감식하기라도 했단 말이냐?』 그러자 왕의 신하들은 말했습니다. 『오, 임금님, 임금님께서 글씨를 잘못 감식하셨을 까닭이 있겠습니까? 알라께 맹세코, 우리의 임금님만큼 서예를 아는 분은 세상에 달리 없을 것입니다. 저희들이 웃는 것은 정말이지 웃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임금님께서는 이 시를 쓴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분부하십니다만, 이걸 쓴 자는 아담의 자식이 아니라, 선장이 기르는 원숭이랍니다. 몹시 비루먹어 꼬리도 없는 원숭이 말입니다. 그러니 저희들이 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왕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그 말이 거짓이 아니렷다?』 『예, 임금님! 알라께 맹세코 사실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몸을 떨면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선장에게로 가 그 원숭이를 사도록 하라』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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