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캠페인/日폭주족]「스피드」만 있고 「굉음」은 없다

  • 입력 1997년 12월 5일 08시 26분


지난 달 22일 밤11시. 일본 도쿄(東京)의 대표적 교외 주택단지 바라키나카야마(原木中山). 사흘간의 황금연휴 기간이어서 주택가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바리바리」(오토바이 소음을 나타내는 일본식 발음)소리에 이 주택가는 금세 전쟁터로 변했다. 10여명의 폭주족이 오토바이를 타고 큰 소음을 내며 질주하거나 묘기를 부리며 소란을 떨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 활동중인 폭주족은 3만5천여명. 이 가운데 9백40개 그룹 2만6천7백여명은 소음을 내며 질주하는 기존의 폭주족이다. 나머지 8천6백여명은 산악도로 등에서 고난도 코너링 등 묘기를 즐기는 「롤링족」과 4백m 직선구간에서 순간 속도를 겨루는 이른바 「04족」 등 신흥 폭주족. 폭주족 수가 상당한 것 같지만 폭주족이 가장 번성했던 80년대 초의 20만여명에 비하면 엄청나게 준 숫자다. 한때 일본의 큰 고민거리였던 폭주족이 이같이 감소한 것은 무엇보다 경찰의 과학적인 단속에 따른 결과다. 일본 경찰은 「교통사고정보관리시스템」 등 정보프로그램을 이용, 폭주족이 모이는 장소와 횟수 구성원 등을 분석해 폭주족이 모일만한 장소에 경찰력을 미리 배치하거나 단속망을 설치하고 있다. 현장에서 직접 폭주족을 검거하는 것은 폭주족에게 치명적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 일본 경찰은 가급적 현장 검거를 삼가고 있다. 대신 통계를 이용, 폭주족의 예상도주로를 파악한 뒤 도로를 가로질러 탄력성있는 고무로 만든 그물을 쳐놓고 폭주족을 토끼몰이하듯 잡고 있다. 이같은 철저한 단속은 실제 폭주족을 검거하는 효과도 있지만 이들이 거리로 나오지 못하도록 예방하는데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일본은 이와 함께 폭주족을 줄이기 위해 심리학자 등을 동원, 폭주족이 오토바이를 타는 이유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회에 대한 반항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한 젊은이들이 스피드를 통해 불만을 풀려는 행동이 폭주족으로 나타났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일본 경찰은 폭주족이 마음대로 달릴 수 있는 장소로 전국 자동차교습소 1천6백여곳과 자동차전용 경주장 수십 곳을 선정, 이들에게 개방했다. 이같이 음성적 폭주족을 양성화하자 실제 거리에서 오토바이가 폭주하는 모습은 크게 줄었다. 더욱이 자동차경주장 등에서 자연스럽게 안전운전교육을 실시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결국 무조건 안된다고 단속만 할 때보다 스피드를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 일본 경찰의 정책이 적중, 일본 폭주족은 90년대 중반부터 쇠퇴기에 들어갔다. 이제 일본 경찰의 과제는 폭력 조직으로 변한 일부 폭주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단속하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도쿄〓전 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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