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비밀스런 저금통이 하나 있다. 다 먹은 고추장병을 깨끗이 씻어서 만든 그야말로 재활용품 저금통인데 싱크대 밑에 숨겨두고 언제든 저금하고싶은 마음이 내키면 사용하는 기쁨의 저금통이기도 하다. 빈병을 모아서 판 돈이나 큰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남은 돈을 저축하기도 한다. 세탁물을 뒤지다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동전도 들어간다.
이 고추장병 저금통은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을 주고 싶거나 감사의 마음을 전할 때 또는 축하할 일이 생기면 언제든 털어서 작은 위로와 행복을 보내는 여유의 통장이기도 하다.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우편배달 아저씨에게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한 켤레의 양말로 전달되기도 한다. 친한 친구의 생일이면 한송이 꽃이나 한 권의 책으로 둔갑해 짧은 편지와 함께 보내지는 등 유용하게 쓰이는 저금통이기도 하다.
칼로 찢을 필요도 없고 생활에 부담도 주지 않으면서 싱크대 밑에 은밀히 숨겨둔 고추장병 저금통은 앞으로도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과 고마운 인연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나르는 일을 두고두고 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김소희(대전 중구 중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