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명제 보완 빠른 결단을

  • 입력 1997년 11월 30일 19시 50분


경제난국을 둘러싼 책임공방이 무성한 가운데 금융실명제가 뜨거운 쟁점의 도마에 올랐다. 각 정당은 현 금융위기 원인의 하나로 실명제의 부작용을 꼽고 전면유보 대폭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금융실명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현 정권의 실명제 고수입장을 비난하면서 독자적인 보완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히고 있다. 정치권의 이같은 공세와 관련, 청와대는 금융실명제 유보, 대출금 상환유예 등을 골자로 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의 발동요구를 일축했다. 그러나 실명제보완 문제에는 다소 유연한 자세다. 근간을 훼손할 수는 없지만 대체입법을 통한 보완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아태경제협력체(APEC)회의 직후 『금융실명제가 풀리거나 보완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고 경고했던 강경자세에서 한발짝 물러선 것이다. 국가경제가 벼랑끝 위기에 몰려 있는데도 정치권과 청와대가 소모적인 공방을 일삼고 있는 것은 한심하다. 실명제의 폐지든 고수(固守)든 각각의 주장에는 나름대로의 논리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폐지를 주장하려면 작금의 금융 외환위기와 과소비 낭비풍조가 금융실명제 탓이라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반대로 실명제의 제도적 보완 수정까지를 거부한다면 그 또한 타당한 이유를 대야 한다.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라는 경제적 실익은 없고 혼란만 초래할 것이라는 논거를 내놓아야 한다. 정치권의 실명제 공세가 대선전 득표전략이어서도 안되지만 청와대 역시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절박한 상황논리와 동원 가능한 수단까지 외면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금융실명제 도입을 지지해 왔고 지금도 실명제 폐지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경제정의와 조세형평 그리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를 감안해도 그렇다. 다만 일찍이 없던 금융 외환위기속에 기업자금난이 극도로 악화한 만큼 실명제의 부작용은 없는지를 살펴 보완할 점이 있다면 곧바로 고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실명제의 골간을 흔드는 무기명 장기채발행 같은 것은 신중해야 하지만 실명제 대체입법안에서 거론된 자금출처조사 면제대상 확대, 과징금 부과율의 인하,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투자분에 대한 출처조사 면제 등은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실명제 도입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준비없이 전격 실시한 실명제가 정상적인 자금흐름을 막고 과소비를 부추긴 측면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경제살리기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생각한다면 보완지시를 주저해서는 안된다. 정치권도 정치공세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국회를 열어 기왕에 제출된 대체입법안을 토대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보완책을 빨리 마련하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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