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신 못차린 재벌

  • 입력 1997년 11월 29일 20시 12분


무분별한 중복 과잉투자와 차입경영 족벌경영으로 경쟁력을 잃은 재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우왕좌왕한다. 서둘러 해야 할 일은 뒷전에 두고 은행빚 상환을 동결시켜 달라거나 임금인상을 억제하자고 주장한다. 고작 한다는 게 대량감원 조직축소이고 금융위기와 대선 분위기에 편승해 대기업의 은행소유 허용 같은 것이나 요구하니 한심하다. 재벌 스스로 뼈를 깎는 자기혁신에 나서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금융 조건으로 금융개혁과 함께 재벌의 대수술을 요구할 참이다. IMF의 요구가 아니라도 재벌체제 혁신은 급하다. 금융산업을 부실 덩이로 만든 근본 원인은 대기업들의 무모한 투자에 있다.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들이 주력 전문업종으로 특화해 경쟁력을 키우는 동안 우리 재벌들은 은행자금을 몽땅 쓸어다 문어발식 기업확장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한국경제가 이 지경에 처했다. 계열사간 빚보증과 상호출자로 한 기업이 흔들리면 그룹 전체가 휘청대는 선단식(船團式) 재벌구조를 타파하지 못하면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어렵다. 그룹 나아가 국가경제 차원에서 중복 과잉 투자는 과감히 해소해야 한다. 재벌들은 이제라도 경쟁력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전문화하는 21세기 생존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취약한 재무구조도 개선할 수 있다. 문어발을 잘라내야 몸통이라도 산다. 경제위기의 책임 공방으로 날을 지새는 정치권도 정신을 못차리기는 마찬가지다. 급한 것은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위한 비전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각 정당은 「네탓」 공방으로 책임을 떠넘기는가 하면 인기에 영합해 표를 얻으려는 공약 내놓기에 바쁘다. IMF구제금융으로 간신히 금융혼란을 수습하더라도 재벌과 정치권이 이런 자세들이면 장래는 어둡다. 실업 물가상승 세부담 가중 임금동결 등 이중삼중으로 고통을 겪는 서민들은 허리띠 졸라매며 경제난 극복에 앞장서는데 지도층이 이래서는 안된다. 지도층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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