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61)

  • 입력 1997년 11월 21일 07시 46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29〉 백부님과 내가 무덤 밑바닥에 이르자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무덤 안에는 눈을 뜰 수도 없을 만큼 연기가 자욱하여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백부님은 뭔가 무서운 꼴을 당할 것 같은 예감을 억제할 수가 없었던지 이런 기도말을 외웠습니다. 『영광되고 위대한 신 알라 이외에 신 없고 주권 없도다!』 그것을 외는 사람은 무서운 일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자욱한 연기 속을 걸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앞에는 뜻밖에도 널찍한 홀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홀 바닥에는 쌀이며 음식물, 그밖의 갖가지 일용품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또 홀 한가운데는 휘장을 둘러친 침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백부님은 휘장이 쳐져 있는 침대로 다가가 휘장을 열어제쳤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백부님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침대 위에는 백부님의 아들과, 그와 함께 묘 속으로 내려갔던 전의 그 여자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숯덩어리처럼 새까맣게 타 도저히 눈뜨고 볼 수도 없는 꼴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최후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오, 이런 애절한 사랑이 세상에 달리 있을까?』 그 가엾은 연인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백부님은 아들과 그 여자의 얼굴에 번갈아 침을 뱉으며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오, 이 개돼지들아! 인과응보다! 현세의 재판은 이렇게 끝났지만 내세의 재판은 더욱 괴롭고, 더 긴 재판이 될 것이다』 이렇게 소리치는 것으로도 모자랐던지 백부님은 신발을 벗어들고는 숯덩어리가 되어 누워 있는 아들을 갈겼습니다. 이미 죽은 아들의 시체를 때리다니, 나는 백부님의 비정한 처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사촌과 여자가 가엾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백부를 만류하며 말했습니다. 『백부님, 제발 고정하십시오. 부모를 버리고 죽는 것이 불효막심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죽은 자식을 그렇게 미워하실 것은 없지 않습니까. 숯덩어리가 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시단 말입니까?』 내가 이렇게 말했지만 백부님의 노여움은 가라앉을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오, 백부님,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 이 불행한 사건으로 인하여 제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지 모르십니까? 이런 고통을 견디느니 차라리 백부님의 손에 죽어버리고 싶습니다』 내가 이렇게 울부짖었을 때에야 백부님은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아주 오랜 뒤에서야 백부님은 어느 정도 제 정신을 되찾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얘, 조카야, 너에게는 아무 죄도 없다. 이놈은 어차피 이렇게 죽어야할 운명이었단다』 이렇게 말하고난 백부님은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차마 말할 수 없는 무서운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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