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선(善)인가.
「개발」과 「발전」은 불가피하며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는 지고지선의 가치인가. 그리하여 우리는 숲 한 가운데를 질러가는 새 도로, 수백년된 지붕이 앉았던 자리에 세워지는 콘크리트 빌딩, 구멍가게를 대신하는 24시간 편의점 등 모든 것들을 단지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 1인당 연간 국민총생산(GNP)가 우리돈 13만5천원(1백50달러).우리는 그들보다 66배 더 많은 돈(1만달러)을 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보다 그만큼 행복할까.
『한국은 부자나 거지나 모두 스트레스 받으며 산다. 하지만 네팔 사람들은 삶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능력을 날 때부터 가진 사람같다. 가난하지만 거짓말 안하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투덜대지도 않는다』
4년 전부터 네팔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는 서정준씨(43)말이다. 네팔 시골에는 40∼50년 전 우리 모습이 있다.
예닐곱 연상의 신부를 맞아들이는 꼬마신랑. 햇볕이 나면 양지바른 대문앞에서 자식놈 머리통을 쑤석거리며 이를 잡는 어머니. 아들 못낳으면 작은 부인을 감수해야 하는 여자들. 수십리길을 걸어야 나오는 초등학교. 농사철이면 텅 비는 교실과 운동장. 저녁이면 「마실」다니며 호롱불밑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낙네들. 시골은 대부분 아직 전기도 전화도 TV도 없다.
마을 입구에 서있는 서낭당과 아궁이부엌 돌담도 흡사하다.
밥을 「밧」이라 하고 아이를 들쳐업으며 「어부바」라고 얼르는 네팔여인네들은 영낙없는그옛날 한국의어머니들이다. 가족은 보통 3대가 함께 산다. 아이들은 부모 할머니 할아버지를 깍듯이 섬기며 지극히 유순하고 다정하다.
네팔인들은 오랜 세월 방해받지 않고 자족적으로 살아왔다. 히말라야와 정글이 지켜줘 남에게 지배를 받은 식민의 역사도 없다. 그들에게 땅과 집을 주고 보호해주는 자연.그래서사람들은거친 환경속에서도 대체로 행복해하며 만족스럽게 산다. 낙천적이며 당당하다.
네팔에서 대형 여행사를 경영하는 아말(38)은 『네팔 역시 서구문명을 비켜갈 수 없겠지만 개발과 발전으로 요약되는 서구식 삶만이 정답은 아니다. 네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만족감을 앗아가는 진보와 발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잘 사는 미국 유럽 일본 사람들이 네팔에 오면 주저앉아 살겠다고 하는 이유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직 1등만을 외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들. 과연 우리가 꿈꾸는 행복의 실체는 무엇인가.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름아래 탐욕의 삶을 합리화한 것은 아니었던가.
네팔은 「발전 병」에 걸린 우리에게 하나의 화두다. 천둥소리다.
〈네팔〓허문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