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金賢哲)피고인의 때이른 석방을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의 심경은 착잡하다. 김피고인은 아무런 공직도 없이 현직 대통령인 아버지의 신분을 이용, 국정을 농단한 장본인이다. 사회 전반을 뒤흔들며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범법자가 구속된 지 5개월반만에 보석으로 풀려나는 것은 일반의 상식이나 법감정에 비추어 이해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다른 정치인과의 형평을 고려했으며 형사소송법상 불구속재판이 원칙』이라고 보석 이유를 설명했다. 법과 양심에 따른 법관의 결정은 존중돼야 하지만 재판부가 보석이유로 열거한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김피고인은 정치인도 아닐 뿐더러 다른 정치인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김피고인의 1심 형량인 징역 3년은 이 사건의 계기가 된 한보사건 관련자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현저하게 가볍다. 홍인길(洪仁吉) 권노갑(權魯甲)의원은 2심에서 각각 징역 6년, 5년을 선고받고 상고중이다. 김피고인이 받은 돈도 이들이 받은 뇌물보다 훨씬 크다. 홍의원은 자신을 한보사건의 「깃털」이라고 비유하면서 「몸통」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 「몸통」이 바로 김피고인이라는 의혹이 시중에서 사라지지 않는 마당에 대통령의 아들만 유독 일찍 석방되는 것이야말로 형평을 잃은 처사다.
1심 판결 이후 보석을 허가할 만큼 사정이 바뀌지도 않았다. 김씨의 건강 상태는 수감생활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약속한 92년 대선자금 잔여금 70억원은 물론 벌금과 추징금도 내지 않았다. 불구속이 재판의 원칙임에는 틀림없지만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다가도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면 법정구속하는 것이 통례다.
김피고인이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여론 재판에 의해 부당한 중형을 받아서는 안되지만 지나치게 관대한 처분을 받아서도 안된다. 이 나라 헌정사와 사법사에 법치주의의 확립을 위한 시금석으로 남을 사건이기 때문에 사법처리의 과정이 투명하고 엄정해야 한다. 특히 문민정부 출범 이후 사정의 단죄를 받았던 사람들이 대부분 풀려났고 김피고인까지 석방됨으로써 현 정부의 개혁사정은 완전히 실종됐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