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35)

  • 입력 1997년 10월 25일 07시 14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3〉 그밖에도 여자는 채소가게 앞에서도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서 그녀는 소금물과 기름에 절인 올리브를 비롯하여 사철쑥, 크림치즈, 시리아산의 딱딱한 치즈까지 사 광주리에 담았다. 이렇게 여러가지 물건들을 산 여자는 마침내 어느 아름다운 저택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실로 아름다운 저택이었다. 앞에는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고, 정원 저편에 겹겹이 둥근 지붕이 솟아있는 더없이 기품있는 대저택이었다. 그것은 높고 굳세고 우람한 멋이 있는 건물이었다. 정문은 눈부신 황금판을 끼운 흑단으로 되어 있고 창문들은 알렉산드리아산 장식 유리로 되어 있었다. 문 앞에 이른 여자는 한 손으로는 살짝 베일을 걷어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문을 두드렸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아름다웠던지 짐꾼은 넋 나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그런데 문이 열리는 순간 짐꾼은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을 열어준 것은 흑인노예나 백인노예가 아니라, 너무나 아름다운 처녀였던 것이다. 문지기 여자는 정말이지 지금껏 짐꾼이 그 뒤를 따라왔던 첫번째 여자보다도 훨씬 아름다웠다. 이마는 백장미처럼 희고, 볼은 아네모네처럼 발그스름하게 빛나고, 눈은 어린 영양의 그것처럼 영롱하고, 눈썹은 팔월이 지나고 막 라마단을 맞는 초승달같았다. 그런가하면 입은 솔로몬의 반지같이 아름답고, 입술은 산호처럼 빨갛고, 하얀 치아는 카밀레의 꽃잎을 나란히 벌려놓은 것 같았으며, 가늘고 긴 모가지는 사슴의 그것 같았다. 비할 데없이 우아한 몸매에 풍만한 유방은 두 개의 석류처럼 터질 듯이 팽팽하였다. 풍만함과 날씬함을 겸비한 균형 잡힌 그녀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금빛 천이 일렁이듯 굼실거렸고, 그 옷자락 사이로는 한 온스의 향유도 들어감 직하게 움푹 팬 배꼽이 드러나보이곤 했다. 그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자를 보고 있으려니까 짐꾼은 넋이 빠져버리는 것 같았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욕정이 타올라 하마터면 머리에 인 광주리를 떨어뜨릴 뻔하였다. 『나는 여태까지 오늘같이 운수 좋은 날은 없었어!』 짐꾼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때 그 아름다운 문지기 여자가 더없이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짐꾼 양반, 수고스럽지만 짐을 안에까지 갖다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다마다요. 어디다 갖다놓아야 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두 여자를 향한 타오르는 연정으로 짐꾼은 열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두 여자는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여자들을 따라 자꾸 들어가려니까, 마침내 널찍한 지하 홀에 이르렀다. 그곳은 온갖 단청과 조각들로 장식한 홀이었다. 위에는 발코니가 있고, 홍예문과 회랑과 벽장, 그리고 휘장을 드리운 밀실 등이 갖추어져 더없이 깊고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게 했다. 홀 한가운데는 맑은 물이 가득찬 연못이 있고, 연못 한가운데는 더없이 아름다운 분수가 물을 뿜고 있었다. 이 도시 안에 이렇게 그윽하고 신비롭고 환상적인 공간이 있었다니,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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