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비자금」 공방이 갈데까지 가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장마저 여야의 치졸한 정쟁장(政爭場)으로 둔갑했다. 특히 14일의 법사위는 여야간 고함 욕설 삿대질로 얼룩졌다.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최고의 법률전문가인 법사위원들이 정쟁의 소도구(小道具)로 전락해 해괴한 궤변과 추잡한 폭언까지 주고 받았다.
신한국당은 국민회의 김대중총재가 지난 10년간 직계가족과 친인척 등 40명의 계좌를 통해 3백78억원의 비자금을 관리했으며 89년에는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의 중간평가를 유보해주는 대가로 2백억원을 받았다고 추가 폭로했다. 그러나 40명의 계좌에 입출금된 금액이 모두 김총재의 비자금이었는지 충분히 입증하지는 못했다. 중간평가 유보 대가 전달주장도 당사자의 부인에 부닥쳤다. 원내발언 면책특권을 이용해 폭로부터 해놓고 보자는 심산이라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특히 「김총재의 처남의 아들의 부인의 언니」의 계좌까지 추적 공개한 것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최대 치적이라고 자랑해온 금융실명제를 본질적으로 훼손하고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했다는 법적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계좌추적에 정부기관들이 참여했다면 그들이 집권당의 정치적 목적에 동원됐다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3김청산의 「혁명적 과업」을 위해 이런 일을 한다지만 방법이 정의롭지 못하면 목적의 정당성도, 국민에 대한 설득력도 약해지게 마련이다.
국민회의는 이번에도 신한국당의 폭로를 「조작극」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폭로 내용이 왜 거짓인지를 논리적으로 입증하기보다는 자료입수 경위와 정부기관 동원여부를 추궁하는데 치중했다. 이런 태도는 사태의 본말을 의도적으로 호도하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진위가 어찌 됐든 국민회의는 일단 의혹의 대상으로 지목된 만큼 의혹 자체를 성실하게 해명하는 것이 순서다.
국민회의가 김대통령의 92년 대선자금과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경선자금부터 밝히라고 반격하는 것도 그렇다. 그런 형평성의 문제를 제삼자가 제기한다면 모르되 당사자가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모양이 안좋다. 여당에 비해 돈을 덜 받았다는 것이지 전혀 안 받은 게 아니라면 야당은 좀더 겸허해져야 옳다.
신한국당은 김총재 등을 곧 검찰에 고발키로 한 모양이다. 국민회의 또한 신한국당 이총재와 강삼재(姜三載)사무총장을 맞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의혹은 가려져야 한다. 그러나 집권당과 제1야당 대통령후보가 나란히 고발된다면 헌정사상 초유의 일일 것이다.
수사착수 여부는 검찰이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검찰의 그동안 자세나 체질로 볼 때 김대통령의 입장표명이나 암시 없이는 어느 쪽으로도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다. 김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경제와 사회에 미칠 영향까지를 깊이 생각하며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