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SBS 미니시리즈 「달팽이」

  • 입력 1997년 10월 8일 07시 38분


사랑은 우리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메뉴다. 그러나 같은 재료라도 요리사에 따라 맛은 크게 달라진다. 케케묵은 사랑타령이 되는가 하면 감동과 공감이라는 드라마적 호소력을 갖기도 한다. 8일 첫회가 방영되는 SBS의 16부작 미니시리즈 「달팽이」(수목 밤9.50)는 멜로물의 새로운 「맛」을 음미할 수 있는 드라마. 줄거리는 새롭지 않다. 동철(이정재) 윤주(이미숙) 병도(이경영) 선자(전도연) 등 네 주인공의 엇갈린 사랑이 각각 4부씩의 테마로 다뤄진다. 흔한 재료로 뜻밖의 감칠맛을 낸 요리솜씨가 놀라울 정도다. 이들은 꼼지락꼼지락 기어가는 제목 속의 달팽이처럼 자기방식의 사랑을 찾아간다. 열세살에서 정신 연령이 멈춘 20대 동철은 연상의 유부녀 윤주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운명적 사랑을 느낀다. 남편에게 외면당한 윤주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진 러브 스토리 속에 살게 된다. 윤주의 남편 병도 역시 정상이 아니다.출세와 결혼에 실패해 직장의 젊은 여직원 선자에게 『첫사랑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사랑을 고백하는 인물. 신데렐라를 꿈꾸는 선자에게 무기력한 중년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병도의 구애는 끔찍하기만 하다. 「달팽이」의 사랑은 비정상적이거나 불륜에 가깝다. 그리고 각 4부마다 똑같이 시작되는 병도의 장례식은 이들의 사랑이 해피 엔딩이 아닌 어두운 사랑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놀랍도록 깔끔하고 신선하다. 「모래시계」「여명의 눈동자」등 사회성 짙은 작품을 써온 작가 송지나는 주인공의 독백과 섬세한 인물 묘사를 통해 시청자들이 지닌 진부한 사랑타령에 대한 거부감을 씻어내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군더더기 없는 화면을 만들어낸 성준기PD의 연출,「스타」라는 이름에 걸맞은 배우들의 호소력있는 연기가 멜로물의 상식과 진부함을 동시에 깨뜨리고 있다. 〈김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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