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쓰레기에 파묻힌 축구장

  • 입력 1997년 10월 6일 20시 25분


축제의 뒤끝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지난 4일 밤 한국과 아랍에미리트가 월드컵 예선전을 치른 서울 잠실주경기장은 온통 쓰레기더미로 뒤덮였다. 한마음으로 뭉친 응원의 열기도 좋고 승리의 기쁨과 열광도 좋지만 뒤끝이 이래서야 이건 문화국민이 아니다. 사람은 흥분하면 이성을 잃기 쉽다. 한 주 전 도쿄에서 일본에 역전승한 기쁨이 아직 덜 깬 시점이었던데다 아랍에미리트를 3대0으로 격파한 이날의 경기내용은 관중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성숙한 국민이라면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이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군중 속에 있을 때 몸가짐이 흐트러진다. 이날 군중의 마음 속에는 오직 축구와 승리밖에 없었다. 그리고 축구는 훌륭하게 이겼다. 모두가 승리의 기쁨에 들떠 「나」를 잊은 것까지는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군중심리 속에 숨어서 자기절제 없이 행동한 결과가 30t이 넘는 쓰레기더미로 나타난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본색이라면 차라리 슬퍼진다. 축구가 끝난 뒤 잠실주경기장에 널려 있는 쓰레기에는 지참이 금지되어 있는 맥주캔과 소주팩이 어지러이 뒤섞여 있었고 일부 관중은 경기 시작 전부터 술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술이란 흥을 돋우게 마련이지만 경기장 규칙에 주류반입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흥분하기 쉬운 경기장 특성을 감안해 차분한 관전질서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그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도 문제로 기록되어야 한다. 5년 뒤 200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린다. 그 때까지도 우리의 질서없는 관전태도가 고쳐지지 않은 채 일본과 비교되며 중계된다면 망신도 큰 망신이다. 경기 못지않게 차분하고 뒤처리 깨끗한 관전문화부터 가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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