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첫눈에 홀린 남자에게 『내 손은 아주 차요』하며 먼저 그의 손을 잡는 여자. 눈망울은 애잔한듯 촉촉하게 빛나면서도 입으로는 세 옥타브를 오르내리며 매끄럽게 사랑을 노래하는 여자, 최주희(28).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여주인공 최주희는 여우같았다. 이 뮤지컬은 뉴욕 뒷골목의 깡패조직을 무대로 바꿔놓은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 청순가련형으로 알려진 여주인공을 최주희는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눈빛과 빼어난 노래실력으로 자기주장이 강하고 당찬 인물로 뒤집어놓았다.
『우리 관객들은 참 보수적이에요. 뜨겁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돌아서서는 여배우가 안 예쁘네, 나이가 들었네 하면서 수군거리더라구요…』
서울대음대와 미국 줄리아드음대 대학원에서 성악 전공. 그런데 희한하게도 경기여고 2학년까지는 음악과 담을 쌓고 살았다. 학습부장인 까닭에 의무적으로 나가야했던 교내 음악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기 까지는.
미국유학도 시집이나 가라는 집안팎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시카고 언니네 집에 얹혀살았는데 구박이 심해 석달을 버틸수가 없었다. 탈출구로 잡은 것이 뉴욕의 줄리아드 입학.
타고난 리릭 콜로라투라의 목소리와 지기싫어하는 성격덕분에 푸치니국제콩쿠르 등 크고작은 대회에서 우승을 도맡아했다. 아무리 큰 무대에 서도 겁이 없는 「천상 무대체질」. 그걸 본 브로드웨이의 캐스팅컴퍼니에서 연락이 왔고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물리치고 「왕과 나」의 텁팀역으로 뽑혔다. 그리고 96년 토니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7일까지 공연. 02―508―8555
〈김순덕기자〉